column review
박찬욱만큼 '코미디'라는 장르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감독이 있을까 싶다. 그만큼 그가 만든 작품들은 진지하거나 어두웠다. 하지만 <어쩔수가없다>의 장르를 규정해야 한다면 나는 당당하게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스타 면발이 끝내주는 집에서 나온 신메뉴를 먹으러 갈 때 일단 면발은 당연히 좋을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된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 있어서 미장센은 면발과 같다. 당연하게도 최고 수준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는 요소. <어쩔수가없다>의 미술팀 작업도 두말이 필요 없다. '역시 박찬욱'이라고 하면 될까. 차량이 폭발하지도 않고 외계인이 침공하지도 않지만 이 영화의 제작비가 170억 원인 이유는 아마도 세계관의 창조비이리라. 그리고 이 정도 세계관의 창조비로 170억 원이 든다고 하면 이것은 꽤나 적절해 보인다. 박찬욱표 미장센은 박찬욱의 영화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자 만족하게 되는 이유다.
이번 영화에 있어 면발이 미장센이라면 이병헌은 신상 소스와 같다. 이병헌은 잘한다. 뭘 어떻게 잘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근데 이제 하나 명확한 것은 <어쩔수가없다>의 이병헌은 박찬욱이 만든 소스라는 사실이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만수를 보다 보면 박찬욱의 의지 같은 게 느껴진다. 이 캐릭터를 입체적 캐릭터로 만들겠다는 의지 같은 것. 영화에 훌륭한 배우들이 무더기로 등장하고 누구 하나 특출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병헌의 캐릭터 말고는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없다. 누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 이유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박찬욱표 이병헌이 그렇게 직조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쩔수가없다>의 주제는 무겁다. 해고당한 회사원이 잠재적 경쟁자를 죽이는 이야기는 만들기에 따라 스릴러는 물론 공포물도, 고어물도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박찬욱은 서사가 흐르는 내내 끊임없이 웃음을 주입한다. 조금 의아하면서 묘한 것은 터져 나오는 웃음이 블랙 코미디향의 실소가 아니라 오리지널 코미디 영화에서 터지는 결의 웃음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영화의 주제가 무거운 것에 비해 주제의식이 깊게 파고드는 느낌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단면부터 실직당한 가장과 가족 구성원의 고뇌까지 다양한 주제의식이 영화를 떠다니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관객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는 못한다.
결론적으로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의 색깔이 듬뿍 들어간 코미디 영화다. 이미 실력이 검증된 요리사의 작품답게 영화의 완성도와 맛은 훌륭하다. 다만 웃음기가 첨가되었다고 해서 대중성이 첨가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박찬욱표 코미디라는 독특한 맛을 즐기기엔 좋은 영화지만 누구나 즐길만한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