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review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끝까지 몰입해서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조금 정신 사납고, 흔들 거리다가, 갑자기 내달린다. 그런 점들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끝내주는 면이 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혐오와 사랑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서사를 추동하는 두 가지 축이다. 그런데 이제 혐오의 감정이 사건을 발화시키고 키우는 역할을 한다면 사랑의 감정은 이야기를 뛰게 하고 마무리하는 역할에 가깝다. 영화의 장르는 범죄/액션이지만 영화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를 음미하다 보면 실질적으로는 로맨스/드라마에 가까운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현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점은 부담스러우면서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직관적인 배경 속에 흔하면서도 격렬한 감정인 혐오와 사랑은 참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것이 폴 토마스 앤더슨(이하 PTA) 감독의 능력인지, 아니면 그저 지금이 그런 시대여서 그런 건지 혹은 둘 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 취향을 떠나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숀 펜과 베니치오 델 토로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관람할 가치는 충분하다. 원래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잘하는 걸 보는 건 언제나 짜릿한 일이다. 이 사람들은 이제 경지에 오른 나머지 원래 배우의 얼굴이 없어지고 캐릭터의 얼굴만 남아있다. 영화가 161분이나 되다 보니 필연적으로 지루한 구간은 존재하고 생각보다 액션의 규모나 강도도 세지 않지만 주연진 세 명이 돌아가며 화면을 채우거나 함께 화면을 채우는 순간만큼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집중력이 높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영화에 레이어가 있다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경우는 연출이 바닥에 단단히 깔리고, 그 위에 배우들이, 그리고 가장 위에 메시지가 올라가 있는 기분이다. 연출에 확고한 스타일이 드러나거나 특별히 대단한 기법이 쓰였다고 느끼진 못했지만 PTA가 만들어내는 화면은 배우와 메시지를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든든하게 받쳐준다. 누군가 이번 영화의 연출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구구절절 좋은 점을 나열할 자신은 없지만 영화가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할 순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현시대에서 겪는 분투를 극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영화다. 서사가 진행되는 방식이나 연출의 리듬감이 들쑥날쑥하고 일부 공감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어 내 스타일이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한 편의 영화로서 재미있게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