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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주인, 이토록 따뜻한 위로

column review

by 맑은구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 영화가 나의 올해의 영화가 되겠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가 있다. 단순히 재미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깊은 만족감을 주는 동시에 영화를 향한 마음을 더 크게 만드는 영화. <세계의 주인>이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이토록 따뜻한 빌드업

초반에는 이 영화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세계의 주인>은 작은 블럭 조각을 쌓아 올리듯 캐릭터와 이야기를 차분하게 쌓아 올린다. 1,000개의 부품을 가진 레고를 조립할 때 처음 몇 조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300조각, 700조각을 쌓아 올리면 윤곽이 잡히고 마침내 모든 조각을 맞췄을 때는 멋진 작품이 되는 것처럼 <세계의 주인>이 쌓아 올리는 캐릭터와 서사는 119분이 지났을 때 깊고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다고 과정이 재미없냐 하면 그렇지 않다. 레고를 조립할 때도 그 과정이 즐거운 것처럼 <세계의 주인>은 빌드업 내내 드라마 장르의 영화가 줄 수 있는 긴장감과 즐거움을 풍부하게 전달한다.

세주1.jpg 빌드업


이토록 따뜻한 배우들

윤가은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우리들>에서도 연기 경험이 전무한 배우들과 멋진 영화를 만들어낸 전적이 있다. '역시' 윤가은이라고 해야 할까? <세계의 주인>에서 주연인 서수빈 역시 연기 경험이 전무하지만 다채롭고 세심한 연기를 선보인다. 격한 감정 연기부터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변화하는 심정 연기까지 해내는 서수빈은 영화의 메시지가 흘러나가지 않고 관객들의 마음까지 전달되도록 보호한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라면 빠질 수 없는 아역배우들의 열연은 온기를 더하고 윤가은의 페르소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장혜진의 연기는 서사에 층을 만들고 깊이를 더한다. 무엇보다 고민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카메오 출연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고민시의 캐릭터가 없었다면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은 지금보다 훨씬 좁았을 것 같다.

세주2.jpg 배우들


이토록 따뜻한 연출

개인적으로 충무로에서 대한민국 학교와 가정집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은 윤가은이 아닌가 싶다.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들어간 영화들도 학교와 집같이 일상적인 공간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부분이 있는데, 윤가은이 표현하는 일상 공간은 너무 생생하다 못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소품은 또 어떤가. 특별할 것 없는 물건이 생명력을 가지고 이야기에 녹아드는 장면은 윤가은 연출의 시그니처다. 미술팀이 매끄럽게 깔아둔 세계관 위를 부지런히 오가는 카메라는 이야기가 가장 깊게 전달될 수 있는 공간에 자리 잡는다. 윤가은 감독의 연출은 블록버스터의 그것처럼 화려하거나, 예술영화의 그것처럼 실험적이진 않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는 단 하나뿐인 열쇠와 열쇠구멍처럼 정확히 들어맞는다.

세주3.jpg 연출


이토록 따뜻한 위로

결과적으로 <세계의 주인>은 윤가은 감독의 인장이 진하게 박힌 따뜻한 위로다.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위로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받았으면 하는 위로다. 벌써부터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생긴다. 윤가은 감독이 또 얼마나 좋은 작품을 선사할지, 그리고 나는 또 얼마나 오래 그 작품을 기다려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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