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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니아, 거리감 느껴지는 소꿉친구

fresh review

by 맑은구름

어렸을 때 알고 지냇던 친구를 22년 만에 만나면 어떨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제 만난것처럼 친근하거나, 내가 알더 사람이 맞나 어색할수도 있다. 2003년 개봉한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작, <부고니아>는 후자에 가까운 작품이다.


<부고니아>는 멀끔하게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다. 원작이 품고 있었던 메시지의 핵심은 잘 보존한채 현대적으로 해석해냈고, 변경된 설정이 적지 않지만 서사의 흐름이나 클라이막스의 리듬감은 잘 살아있다. 무엇보다 겨우 1년 전에도 <가여운 것들>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좋은 호흡을 선보였던 에맘 스톤의 연기는 확실히 보는 맛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에서 보여준 백윤식의 연기가 더 취향에 맞았지만 엠마 스톤의 연기는 취향을 떠나서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미술팀의 작업, 화면, 음악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퀄리티가 높아서 119분 내내 눈과 귀가 편안했다.

부고3.jpeg 엠마 스톤


내가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여기까지 평가한 후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부고니아>의 이름을 올릴수도 있었을 것 같다. 다만 원작을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 <부고니아>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점잖았다. 서사의 리듬감은 있었지만 스릴러적 긴장감이 큰 폭으로 요동쳐야 하는 순간에 그래프의 폭이 너무 작았다. 코미디적 요소가 있기는 했지만 원작에 비하면 너무 많이 희석되어서 영화의 톤앤매너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도 아쉽다.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만든 영화치고는 감독의 인장이 너무 살살 찍혀 있다는 점도 불만이다. 심지어는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를 받을 만한 영화인지도 잘 모르겠다.

부고2.jpeg 원작과의 비교


결론적으로 <부고니아>는 한 편의 영화로서 충분히 좋은 작품이지만 원작을 본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영화다. 어렸을 때 친하게 지냈던 조금 특이한 친구가 22년이 지난 후 갑자기 여의도 금융회사 과장님이 되어서 양복을 입고 나타난 기분이랄까.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고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기대했던 영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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