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나날, 삶이라는 이름의 여행

fresh review

by 정세현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훌쩍 태어나서 때가 되면 훌쩍 떠난다. 그리고 영화란 그 훌쩍과 훌쩍 사이의 어딘가를 영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여행과 나날>은 그런 면에서 가장 영화 같으면서도 가장 영화 같지 않은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인위적인 빛이나 카메라의 무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정적인 게 아니라 화면 속 재료들에 조미료를 치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가 느껴진다고 할까. 처음에는 화려하고 과감한 자극에 익숙한 뇌세포가 지루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20분, 40분 영화가 흘러갈수록 어둠에 눈이 적응하면 달빛 아래에서도 길이 보이듯 슴슴한 맛이 혀끝에서부터 살아난다. 1.37:1의 독특한 화면비는 화면 속 요소들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들로 인해 영화관에 앉아서 디톡스를 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영화가 마냥 심심하기만 한 건 아니다. 서사 중간중간 인물들의 행동이나 대화 속에는 웃음 포인트가 툭툭 들어가 있는데 이 웃음 타율이 생각보다 높아서 미소 짓게 되는 순간들이 적지 않다.

풍경.jpg 슴슴한 화면


그저 바라보며 감상하고 힐링하기에 충분히 좋은 영화지만 나처럼 기승전결의 리듬감과 이야기의 맥락을 따져가며 보는 관객이라면 스타일에 안 맞을 수 있다. 특히 영화가 89분으로 굉장히 짧은 편인데도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액자식 구성을 취했다는 점, 영화가 확실히 1인 주연 체제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생각보다 등장인물이 적지 않다는 점은 이야기 곳곳에 작은 물음표를 만든다.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체계적인 스토리텔링에 있지 않기에 한편으론 당연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약간의 찝찝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야기.jpg 작은 물음표들


결론적으로 <여행과 나날>은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단 한 사람의 삶의 단면을 뚝 잘라서 보는 것처럼 쉬어가듯 감상하기 좋은 영화다. 우리 모두 열심히 삶이란 이름의 여행을 하고 있으니 그 정도의 시간은 쉬어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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