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실화를 디딤돌 삼아 던지는 질문

column review

by 정세현

Intro

한국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고인 것을 넘어서 흐른 건 오래간만이다. 이야기는 예상을 많이 벗어나지 않는데, 정우와 강하늘, 김해숙의 연기는 내가 참아낼 수 있는 벅참의 수준을 한참 벗어나 버렸다.


신파는 줄이고 감동은 늘리고

<재심>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최근 한국 영화들에서 경쟁하듯 연출하는 신파성 장면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눈물 전용 OST가 깔릴 때부터 나오던 눈물도 쏙 들어가는 전형적인 한국형 신파는 <재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재심>에서는 배우들이 빚어내는 진정성 있는 감동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차분하게 모든 것을 끌고 가는 영화는 차근차근 관객들의 감정을 어루만지며 조급함을 보이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심정과 상황을 담담하고 담백하게 풀어놓는 영화는 과격한 장치와 억지 없이도 끝내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감동


만원으로 볼 수 있어서 감사한 연기

솔직히 말하면 정우와 강하늘이 A급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기는 그럭저럭 하겠지만 이 둘만으로 영화의 퀄리티가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를 감상한 후 나는 내가 스스로 했던 생각에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정우와 강하늘이 보여준 연기의 수준과 감정을 흔드는 대사는 각본과 연출을 압도하는 단 하나의 후킹 요소다. 누군가 나에게 그래서 <재심>을 왜 봐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우와 강하늘의 연기 때문이라고. 눈물이 고인건 상황과 서사가 슬퍼서인데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막지 못한 이유는 정우와 강하늘의 빠져드는 연기에 차마 손을 눈으로 움직일 생각조차 못해서였다. 더불어 김해숙 또한 <재심>에서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배우인데, 그녀가 존재하므로 인해 영화는 더 깊숙하고 빈틈없이 관객들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었다.

연기


실화를 디딤돌 삼아 던지는 질문

<재심>에 통쾌한 법정 공방이나 사이다 같은 결말은 없다. 최근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권성징악의 주제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심>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히 모든 국민들에게 유의미하다. 영화는 현우가 억울하게 복역한 10년이라는 세월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단지 현우의 억울함에 시선을 맞추게 되겠지만 영화는 그 뒤에 있는 더 큰 질문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준영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외치는 문장에서 결국 그 질문에 도달한다. 법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지. 그렇게 <재심>은 실화의 소재를 낭비하지 않고 멋지게 사용해낸다. 메시지를 향한 디딤돌로.

디딤돌


추천할만한 영화

영화라는 콘텐츠는 주로 재미를 위해 소구 되는 경우가 많다. 솔직하게 말해서 <재심>이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답할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보았을 때 관객들이 의미 있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 관람한 영화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내 삶에 작은 영향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 영화는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재심>은 누군가에게 한 번쯤 확인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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