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아이가 무심한 말투와 작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선생님이 그러니까 우리 반 아이들이 떠들죠."
혼잣말처럼 조용히 하는 말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마음속에 무언가가 계속 걸렸다. '그러니까란 뭘까' '화를 잘 내지 않는 걸 말하는 걸까' 아니면 '아이들 말에 잘 웃는 걸 말하는 걸까'
초등학생 시절, 아침 조례 때 어떤 학생들이 큰 소리로 떠들길래 무슨 일인가 뒤돌아본 적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날아오는 꿀밤. "왜 이렇게 시끄러워!". 새로운 담임 선생님께서 나의 머리를 쥐어박으셨다. 나도 함께 떠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선생님, 저는 안 했는.."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뻔했다. "시끄러워! 앞에 봐!". 억울한 마음만 더 쌓인 채, 그저 앞만 봐야 했던 그때가 생각난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그때의 기억이 정말 강렬했나 보다.
나는 교내에 어떤 선생님을 마주치든 간에 인사하는 습관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에 반갑게 웃으시면서 인사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어떤 선생님은 이름이 뭐냐고 물어봐주시기도 했는데, 그날 하루는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반면 표정 변화 없이 그냥 쓱 지나가는 선생님 또한 있었다. 혹시 못 들으셨나 해서 다음번에는 더 크게 인사했는데 그냥 또 지나가시더라. 어린 나에게는 상처였다. 학교 시간 동안 내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었다. '내가 선생님이 된다면 학생들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하고 말이다.
세월이 지나고 어찌저찌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말과 행동에 많이 신경 썼다. 쉬는 시간에 앞에 나와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는 학생에게는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었다. 화를 내어야 하는 상황에는 어떤 상황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했고, 각자 아이들 입장을 들어보았다. 물론 우리 반 학생이 아니어도 인사하는 학생들에게는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말은 "그렇게 하니, 아이들이 시끄럽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더 이상 이렇게 지내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학생 말이 이해 가는 점도 있었다.
중학생 때, 너무 착한(?)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학생들이 유독 그 시간에만 더 장난을 치고, 애꿎은 질문도 해댔다. 그 덕에 선생님께서는 진도는 거의 못 나가고, 아이들과 씨름만 하다 나갔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의 반응에 못 이겨 결국 학기 말에는울음을 터뜨리셨다. "착각하지 마. 너희 때문에 우는 게 아니니까." 라며 뒤로 돌아본 채 말씀하셨지만, 어딘가 모르게 참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 왜 그렇게 착한 선생님이 되려고 해서 저렇게 고생하실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전 반을 맡을 때, 쉬는 시간 옆 반 학생이 우리 반에 찾아와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 반 선생님 무서워?". "아니? 우리 반 선생님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냥 솔직하게 했던 말이었지만, 빈정거리는 말투에 기분이 나빴다. '하~나도 안 무서운데?' 뒤에는 (그래서 우리 반에서는 내 멋대로 다 할 수 있어)의 말이 생략된 것처럼 느꼈기 때문일까.
올해 우리 반 학생은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화내지 마세요. 무서워요." 이 말을 듣고선 기분이 묘했다. 3년 전 담임을 맡고 단호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아이들에게 가끔 정색하며 말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런 걸 두고 어떤 학생은 무섭다고 생각했나 보다. 무섭게 보이는 데 성공한 게 기분은 좋았지만, 이상하게 또 마음 한편은 안 좋았다.
대학 생활 때를 되돌아보면 바른 교사 키워드에는 '존중', '사랑', '배려', '이해', '소통'과 같은 것들이 주롤 이루었다. '좋은 교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는 대부분의 학생이 소통, 존중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하지만 그때 우리는 모두 환상을 꿈꾸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에게 꿀밤을 주신 선생님, 인사를 받아주시지 않는 선생님 또한 첫 학교에 부임했을 때부터 그랬을까?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친구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사적인 내용까지 학생들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들과 너무 가까워져 곤란할 때가 상당히 많았다고 했다. 내년부터는 사적인 내용을 하나도 말 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건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지 않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차라리 수학 공식처럼 이상적인 학급 경영을 위해 호랑이 50%, 천사 50%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만큼을 위해 노력하면 되니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고길동 그림(사진=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캡쳐)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너도 어른이 되는 거라고 한다. 지금 내가 바로 이 과정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만의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와 허용할 수 없는 범위를 오늘부터 차근차근 정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