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간신히 침대에 누웠고, 또 한 번 동생과 나를 불렀다.연설이 시작되었다. 주제는 다양했는데, 우리가 학생이기 때문인지 공부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하지만 끝은"술을 할 줄 알아야 해. 어느 정도의 술은 좋아."로 마무리지어졌다.
술에 취한 채 우리에게 건네는 아빠의 말씀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지금처럼 만취한 채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가족들만 더 고생이었고, 아빠의 연설로 인해 우리는 영혼 없는 리액션만 남긴 채 각자의 방으로 돌아왔다.
'담배는 안되는데, 술은 괜찮은 건가?' 참 이상할 노릇이었다.
대학교 입학 후, 선후배가 함께 하는 술자리가 정말 많았다.환영회, 대면식, 체육 대회 , 음악회, 총모꼬지, MT 등 셀 수 없는 여러 학과 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항상 뒤로는 '뒤풀이'가 있었다. 뒤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어 조금은 의미 있을 시간인 줄 알았지만전혀 아니었다.
'사발식'은 단언컨대 최악의 술자리였다.
학과의 모든 남자 선배들을 초대했고, 1학년 남학생들은 발판 위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또여러 술을 섞어주었고, 약 1000cc를 그자리에서 전부 마셔야 했다. 많은 선배들이 모여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 또한 아니었다.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누가 거절할 용기가 있었을까?
이 사건을 계기로 '술'만 생각나면 진절머리 나게 되었다. 원래 '술'이라고 하면 크게 좋게 생각했던 게 없었지만, 덕분에 '술'이라고 하는 건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2학년이 되어서는 학교 행사 뒤풀이를 자연스레 피하게 되었다.편한 친구들과 마시는 것 또한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 공허함이 들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3년을 보내고, 재수까지 총 4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왔다. 매번 모의고사를 치며, 좌절하기도 했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렵게 들어온 학교가 나에게 선물하는 건 쾌락이라는 게 날 힘들게 했다.
방학 때, 내일로를 타고 전라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하동, 광양, 여수, 순천, 보성, 광주 등 전라남도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친구와 나는 하루 단위로 기차역에서 내렸고, 그 지역에서만 갈 수 있는 곳 들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여름이어서 정말 더웠지만, 푸르고 청량한 전라남도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 역인 목포에 도착했고, 그날 하루도 게스트하우스(이하 게하)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평소였다면 우리끼리 이야기하며 하루의 회포를 풀었겠지만, 마지막을 기념을 하기 위해 게하에서 열리는 술자리에 참여했다. 술이라면 질색했던 나였지만 그때는 왠지 모르게 한 번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술자리에는 우리보다 어린 대학생부터 직장에 다니고 있는 40대 분들까지 연령대가 참 다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게하 사장님의 주도로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걱정했던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고, 자연스레 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서로 자유롭게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잔이 비었다면 받기도 하고, 따라주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공감되는 요소가 많았다. 각자의 고민이 있다면 진심으로 경청했고, 꿈이 있다면 지지해주었다. 참 이상했다. 여행을 와서 모르는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이렇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게.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한다. 반 아이들에게 말하는 내용이지만, 뭐든 적당한 게 좋다. 장난으로 시작한 게 과하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그게 어떤 의도로 한 행동이든 말이든. 나는 '술'로 중요한 인생 교훈을 얻게 되었다. 또 평생 이해되지 않을 것 같았던 아빠의 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요즘은 일 마치고 나면 편의점에 들러 과자 하나와 맥주 한 캔을 사 온다. 티비를 켜며 예능을 보며 혼자 맥주를 한 캔 하는 날이면, 일을 하며 힘들었던 게 잊혀지곤 한다. 내일로 여행 때의 추억이 생각나기도 해서 괜히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