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재수 학원을 다니며, 수능까지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일이 수능이라고 했다. 정말 열심히 했지만, 한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당시에는 'ebs연계'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각 과목의 지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 과목에서 어떤 점수가 나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 중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금세 포기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는 할까?.
사실 고3 수능을 마치고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6월,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 비해 수능 점수가 턱없이 모자랐다.'더 잘할 수 있는데.. 이건 내 실력이 아닌데..'. 내 점수가 아니라고 부정했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은 조금 달랐다. 그때 당시의 나를 표현하자면 "너무 열심히 해서 오기가 생길 수 없었다."는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인 것 같다. 물론 똑같은 이 재수 생활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최선을 다 해 후회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던 것 같다.
나중에 대학교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낮은 단계의 몰입을 경험했던 것 같다. 자나 깨나 어떤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시간 가는 줄 몰랐었기 때문이다.
황농문 교수님의 베스트셀러 '몰입' / 출처 : YES24 홈페이지, 내가 경험한 몰입과 유사한 내용이 담겨있다.
거의 하루 종일 공부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했다 해도 무방하다. 아침에 일어나 스터디 플래너를 펴고, 오늘 공부할 것에 대해 적고 하나씩 완료해갔다. 밥 먹는 시간, 양치하는 시간, 심지어 샤워하는 시간에도 내가 할 일, 고쳐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개념 공부하고, 기출문제 풀고, 오답을 정리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 잠들기 전에 아쉬움이 남는 날도 있었지만, 짜 놓은 계획을 전부 끝내는 날에는 그만큼 뿌듯한 날이 없었다.
'왜 이렇게 까지, 무엇을 위해 공부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억울하고 분했다.
가끔 SNS를 볼 때면,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억울함, 슬픔, 분함, 부러움, 아쉬움, 원망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친구들은 대학교에서 이렇게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할까?' 하고 생각했다. 특히 내 친구들 중에서는 재수하는 친구들이 없어, 더욱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재수 생활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부할수록, 다른 사람 앞에서증명하고 싶었던 마음이 스스로에 대한 도전으로 바뀌었다. 공부를 하며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한 지를 깨닫고, 채워과는 과정에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오늘 수능 시험을 마친 모든 수험생들이 고생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늘 수능에 대해 정말 후회가 많이 남는다면, 다시 한번의 도전을 꼭 추천하고 싶다.
다만 그때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나중을 되돌아봤을 때, '그때의 시간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고 말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충분히 부끄럽지 않게, 칭찬할 수 있도록 하자. 몰입을 통해 공부한다면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닌, 나에 대한 도전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지금보다 더 단단한 사람을 만들 거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