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내기 권선생 Dec 03. 2020

재수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몰입에 대한 경험

 수능 전날에, 한 선생님께서 이렇게 물으셨다.


"이 질문은 매년 수능 하루 전에 수험생들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이번 1년 동안 정말 원 없이 공부했습니까?"


 3월에 재수 학원을 다니며, 수능까지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일이 수능이라고 했다. 정말 열심히 했지만, 한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당시에는 'ebs연계'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각 과목의 지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 과목에서 어떤 점수가 나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 중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금세 포기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는 할까?.


 사실 고3 수능을 마치고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6월,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 비해 수능 점수가 턱없이 모자랐다.'더 잘할 수 있는데.. 이건 내 실력이 아닌데..'. 내 점수가 아니라고 부정했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은 조금 달랐다. 그때 당시의 나를 표현하자면 "너무 열심히 해서 오기가 생길 수 없었다."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인 것 같다. 물론 똑같은 이 재수 생활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최선을 다 해 후회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던 것 같다.


 나중에 대학교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낮은 단계의 몰입을 경험했던 것 같다. 자나 깨나 어떤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시간 가는 줄 몰랐었기 때문이다.

황농문 교수님의 베스트셀러 '몰입' / 출처 : YES24 홈페이지, 내가 경험한 몰입과 유사한 내용이 담겨있다.

 거의 하루 종일 공부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했다 해도 무방하다. 아침에 일어나 스터디 플래너를 펴고, 오늘 공부할 것에 대해 적고 하나씩 완료해갔다. 밥 먹는 시간, 양치하는 시간, 심지어 샤워하는 시간에도 내가 할 일, 고쳐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개념 공부하고, 기출문제 풀고, 오답을 정리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 잠들기 전에 아쉬움이 남는 날도 있었지만, 짜 놓은 계획을 전부 끝내는 날에는 그만큼 뿌듯한 날이 없었다.



'왜 이렇게 까지, 무엇을 위해 공부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억울하고 분했다.


 가끔 SNS를 볼 때면,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억울함, 슬픔, 분함, 부러움, 아쉬움, 원망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친구들은 대학교에서 이렇게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할까?' 하고 생각했다. 특히 내 친구들 중에서는 재수하는 친구들이 없어, 더욱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재수 생활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부할수록, 다른 사람 앞에서 증명하고 싶었던 마음이 스스로에 대한 도전으로 바뀌었다. 공부를 하며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한 지를 깨닫고, 채워과는 과정에서 표현할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오늘 수능 시험을 마친 모든 수험생들이 고생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늘 수능에 대해 정말 후회가 많이 남는다면, 다시 한번의 도전을 꼭 추천하고 싶다.


 다만 그때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나중을 되돌아봤을 때, '그때의 시간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고 말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충분히 부끄럽지 않게, 칭찬할 수 있도록 하자. 몰입을 통해 공부한다면 다사람과의 비교가 아닌, 나에 대한 도전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지금보다 더 단단한 사람을 만들 거라고 확신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숙학원에 입소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