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계약의 기쁨을 정점으로, 조급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목차와 키워드를 미리 생각해 두었지만, 완성해야 하는 글의 양이 짐이 되어 갔다. 그러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힘겹게 써 내려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저 오늘과 내일 써야 할 양을 확인하고, 제출 기한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떤 글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자본주의'에선 철저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사실 당연했다. 출판사란 출판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자들이 읽고 싶고, 또 사고 싶은 책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끝없는 단어, 문장, 글 통째로의 수정을 거쳐야만 했고, 그렇게 책이 완성되었다.
책의 완성은 내게 이루어 말할 수 없는 큰 뿌듯함을 주었다. 실물로 된 책을 받았을 때,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무언가를 해냈다는 생각과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아 졌다. 이루었다는 생각에 '글'을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아 졌다. 무엇보다 내 책을 찾아서 읽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유명 작가가 아니기에 팬층이 없었고, 투고로 선정된 책이 아니라 홍보도 지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탈감이 밀려왔다. 내 노력에 대해 너무 기대한 탓이겠지 하면서도, 어딘가 답답함이 밀려들어 왔다.
내 인생은 원점이었다. 아니, 오히려 글 쓰기가 부담스러워지고 있으니 후진하고 있다는 말이 더 맞았다. 스스로 유명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착각해서 그런 걸까. 결국 내 브런치는 방치되고 말았다. 그렇게 슬럼프가 불쑥 찾아왔다.
그러고 약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 동기 없이. 그리고 처음 글을 쓰고 싶어 졌던 순간이 떠 올랐다. 혼자 책상에 앉아 글을 끄적이고, 스스로 치유받았던 때가. 또 그 글을 공유하고 싶어 브런치 작가에 신청했을 때의 기억도 떠 올랐다.
그리고 결심했다. 하나를 위해 모든 걸 걸진 말자고. 노력했던 시간만큼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데 큰 시간이 걸리는 거 같다. 또 큰 기대도 걸지 말자. 기대만큼 실망감도 큰 법이다. 긍정적인 반응과 관심이 많다면 좋겠지만, 아니면 또 어떠한가.
이제는 하루 중 15분간 글 쓰기를 하기로 했다. 투박하고 수수한 단어와 문장일지라도, 내 하루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애초에 글쓰기를 시작한이유도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서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