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아슬아슬한 밀당을 하고야 말았다. 어떤 칭찬을 해도 될지, 어느 정도의 야단을 쳐도 될지 가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 말과 행동이 학대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며 혼자 속앓이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절친한 친구가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받았고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때마침 언론에서는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비추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점점 더 아슬해져 갔고, 이도저도 아닌 관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친하지만, 친밀하다고 할 수 없는. 그렇다고 안 가깝지도 않은. 밍밍한 관계. 쓴웃음을 지으며 교실 문 밖을 나왔다.
"1년 동안, 즐거웠습니다. 영어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처음 맡은 영어 과목이었지만, 나름 평타는 한 거 같은 생각에 '그래. 나쁘지는 않았지'를 외치며 교실 밖을 나왔다. 올 한 해 영어 수업은 게임 활동으로 주로 구성했기에, 반응이 나름 괜찮았다. 많은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고 너무 쉽게 구성한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민원 받는 거보다는 낫지' 하며 냉소를 지었다. 학생들의 관계도, 그리고 수업도 특별함을 잃어갔다.
교실을 나서려는데, 적극적인 성격을 지닌 한 아이가 내게 달려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사인해 주세요!"
내게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만든 하트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학생들이 내게 쪼르르 달려와 꼬깃꼬깃 접은 편지를 건네주었다. 펼쳐보니, 삐뚤삐뚤한 글씨체 아래에는 내 수업이 재미있고 기다려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글을 보는 순간, 한 가지 드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 나 지금 나쁘지 않구나.'
편지라는 존재는 참 오묘했다. 작은 종이 한 장일뿐인데, 내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득 심어주니 말이다. 또 편지는 금세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추억의 세계로 초대했다. 집으로 달려와 교생 때부터 모은 편지 상자를 꺼냈고, 하나씩 펼쳐보기 시작했다. 서투르지만, 열정만큼은 가득했던 학생의 시간으로 떠나게 되었다. 긴장하고 설레기도 했던, 그때의 교생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하지만 눈에 띄는 한 문장으로 여정은 종결되고 말았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이상하게 앞이 깜깜해졌다.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인가?' 분명 어릴 때 착하다는 소리를 꽤 들어왔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희미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존경한다'라는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진심 어린 교육을 하지 못하는 지금의 나를 봐서는 '존경한다'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사가 되고 나이가 들수록 따뜻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반대로 더 차가워지고만 있었다.
교사와 학생을 모두 지킬 수 있는 교육을 할 수는 없을까. 무엇보다 교사도 학생도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느니, 너그럽게 기회를 주고 용서할 수 있는 허용적인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존경할 수 있는 학생', 그리고 '존경받을 수 있는 교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