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학교의 비전도출 과정과 그 의미
들어가며
최근, 사회의 급속한 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학교 혁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혁신학교, 미래학교 등의 국‧내외 정책과 사례들은 총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학교 혁신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학교 혁신과 관련한 연구들은 기존의 학교 혁신 정책들이 학교구성원들의 맥락을 중시하지 않거나 구성원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경향을 비판한 바 있다(Elmore, 2004; Evans, 1996; Fullan & Hargreaves, 2006). 학교 혁신은 학교공동체 구성원이 주체로서 단위학교의 변화와 개선을 추구해야한다는(Hall & Hord, 2006) 관점이 우리나라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다.
학교공동체가 학교 혁신의 주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유된 목표나 가치, 즉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강영택, 2009; 김영화, 2005; 주철안, 2002; 전현곤, 2009). 비전은 학교구성원들을 동기부여하고 학교의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는데 기본토대가 된다. 비전은 개별구성원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와 현실간의 차이를 줄이고자 하는 전략과 행동을 유발한다. 학교공동체의 혁신 과정에서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공동체의 응집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때, 학교공동체의 비전은 구성원들 개개인의 비전과 어느 정도 일치해야 한다(Sims & Lorenzi, 1992). 특정인 혹은 특정집단만이 중시하는 가치가 비전으로 제시된다면 비전 공유가 일어나기 어려우며 궁극적으로는 구성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그동안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은 학교 혁신과정에서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참여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학교공동체의 비전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김정섭 외, 2007; 신상명, 2003).
따라서 학교공동체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개별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이 비전도출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비전 공유를 통한 학교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전에 대한 연구는 주로 경영학 분야에서 이루어졌으며 단위학교 수준에서 학교공동체의 비전을 도출하고 공유한 사례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혁신 지향적 학교 문화(강충열, 2014), 혁신학교 운영(이경아, 정미경, 이병준, 2016), 교육공동체 형성(박한숙, 이대용, 2017; 오지연, 최진영, 김여경, 2016) 등에서 비전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으나 비전도출 과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가 단순히 교육 수요자가 아닌 학교공동체의 주체로 기능한다고 할 때, 단위 학교 수준에서 나타나는 학교공동체의 비전 도출 과정은 기업이나 고등교육과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학교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C학교의 비전 도출 사례를 다루었다. C학교는 단위학교 수준에서 학교공동체가 참여하여 비전을 도출했으며 교육계획은 물론이고 실제 교육활동에 비전을 활용하고 있다.
학교비전을 도출하는 과정과 방법
학교공동체의 비전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는 비전-핵심가치-구성원상(학생상, 교사상, 학부모상)이다. 이때의 비전은 학교가 추구하는 최종목표와 이상적인 모습, 핵심가치는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내면화해야 하는 속성 혹은 비전을 이루고 있는 핵심요소이며 구성원상은 핵심가치를 구현하는 교육 주체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의미한다. 이중 학생상은 학교의 핵심가치가 반영된 교육활동의 실질적인 목표가 된다. 학교교육의 목적이 학생들의 성장에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교사상과 학부모상은 학생상을 실현하기 위해 확보해야 하는 모습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비전도출 모형을 구체화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C학교에서는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서술식 의견을 토대로 핵심가치를 먼저 선정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구성원상을 도출하였다. 비전이 학교가 추구하는 최종목표로서 궁극적인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비전으로부터 핵심가치 및 구성원상을 도출하는 연역적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따라서 핵심가치 도출 후 구성원상을 명확히 하였고 이러한 모습들을 포괄할 수 있는 최종적인 비전을 도출하는 귀납적 방식을 선택하였다. 학교 비전은 문헌분석, 전체 구성원 설문조사(총 3차), 변형된 델파이 등의 방법을 통해 아래의 그림과 같이 도출되었다. 전체 과정은 2018년 3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었다.
학교비전도출, 그 이후
비전이 도출된 이후 C학교는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도출된 비전을 다양한 차원에서 공유하고 있다. 첫째, 학교 차원에서는 학년 초에 교육계획 수립 시 각각의 교육활동들과 핵심가치를 연결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는 지향하는 핵심가치를 분명히 인식하며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학생에게 배부되는 다이어리, 학교 홈페이지, 각종 홍보물 등을 통해 학교의 비전이 이미지화되어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둘째, 교과 교육과정 차원에서도 비전이 공유 및 활용되고 있다. C학교의 특정 과목에서는 교과목표 중 하나로 C학교의 핵심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일부 과목에서는 교과협의를 통하여 5개의 핵심가치 중 도전, 협력, 공감 3가지를 과목의 핵심가치로 정한 뒤, 학년별로 집중 핵심가치를 배정하였다. 셋째, 단위 수업 차원에서 C중학교의 자유학기제 수업은 학교공동체의 비전을 배우고 익히는 수업으로 시작되었다. 학교공동체의 비전과 친숙해지며,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식을 형성하였다. 또한, 일부 교과에서는 동료평가의 기준으로 적용되기도 하였다.
한국형 학교비전 도출과정의 특징
단위학교에서 학교공동체의 비전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났다. 첫째, 학교의 비전은 포괄적으로 제시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비전을 도출하였다. 최고경영자로부터 구성원에게 전달되는 방식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견으로부터 학교공동체의 비전을 도출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학교 비전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경우,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 선택을 기반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지만 학교는 우연적 요소와 선택불가적 요소를 일부 포함하여 공동체가 형성된다. 기업의 근로자나 고객은 조직의 비전이 개인에게 수용되지 않을 경우 공동체에서 이탈할 수 있지만 학교의 학생과 교직원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또한, 비전을 중심으로 결성된 공동체가 아니라 이미 형성된 공동체에서 비전을 도출하는 상황도 비전도출과정의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학교공동체의 비전이 구성원들에게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고등교육기관에 비해 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와 의견들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도록 보다 포괄적인 비전을 설정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둘째, 단위학교의 비전도출과정은 의견수렴-핵심가치-구성원상-학교비전(궁극적인 목표) 도출로 이어지는 귀납적 방식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기업이나 고등교육 사례에서는 궁극적인 목표인 조직의 비전이 세워지고 미션, 전략 혹은 믿음, 목적, 사명 등이 도출되는 연역적 방식을 취했다. C학교에서도 기존의 콜린스-포라스 기본틀(비전 프레임)을 참고하였으나 비전도출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요소를 참고하였을 뿐 도출과정에서는 다른 방식이 나타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포괄적인 성격을 갖는 궁극적인 목표(비전)으로부터 학교가 지향하는 구체적인 학생상, 교사상, 학부모상을 도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공동체의 의견 수렴을 통해 도출된 핵심가치는 구체적인 구성원상과 궁극적인 학교 목표가 연계되는 역할을 하였다. 셋째, 학교의 비전에 포함된 핵심가치, 구성원상(학생상, 교사상, 학부모상)은 학생상으로 적합한 가치에 기반하여 도출되는 특징이 나타났다. 학교의 핵심 기능이 학생의 변화와 성장에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학교의 교육활동을 통해 학생이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는 학생상의 핵심내용이 된다. 따라서 교직원, 학부모, 학생이 학교의 동등한 주체로서 비전도출과정에 참여하더라도 학교 비전의 내용들은 학생상으로 적합한 가치를 기반으로 도출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학교의 교사상과 학부모상은 학교가 지향하는 학생상을 실현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모습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C 학생상으로 적합한 가치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학교의 핵심가치를 도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 비전 도출이 갖는 의미
이러한 활동들은 학교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단위학교에서 비전을 도출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기존의 학교 혁신의 연구에서는 공유된 비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나 비전의 도출 과정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했다. C중학교는 실제 사례를 통해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한 비전 도출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였으며 이는 향후 비전을 도출하고자 하는 단위 학교에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학교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비전을 도출함으로써 구성원들의 비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학교의 비전은 상급기관에서 하달되거나 학교장이 단독으로 지정하였기 때문에 학교 구성원들은 비전에 대해 무관심하였다. 그러나 C학교에서 도출된 비전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다양한 측면에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활용되고 있다. 비전을 도출하고, 공유하고, 관리하는 역할이 학교 구성원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인식함으로써 학교 혁신의 주체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이 글은 아래의 논문 중 일부 내용임을 밝힙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의 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은상, 김유정, 박의현 (2018). 학교공동체의 비전 도출 과정 탐색: C중학교 사례를 중심으로. 교육혁신연구, 28(4), 319-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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