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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입사원 Jan 19. 2018

개발자·기획자·운영자가 참여한 프로젝트 회의의 참모습

뉴스룸 긴급토론 '가상통화,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를 보면서

아. 이 느낌적인 느낌. 낯설지가 않아

아사리판.

몹시 어지러운 속세의 정치판을 '난장판'이라고 말한다. 개들이 진흙탕에서 물고 뜯으며 싸운다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벌어지는 판이 '개판'이다. 그리고 몹시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엉망인 상태를 우리는 '아사리판'이라고도 한다. [출처: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신규 플젝을 시작하는 IT회사의 실제 회의실

각 분야의 선수들이 나와 토론을 한다. 각자 분야에서 한 획을 긋거나 긋고 있는 분들이다. 토론의 형태가 아니라 인터뷰 형식이었다면, 각자의 말만 모아본다면, 하나 틀린 말이 없을 만큼 다 주옥 같고 좋은 의견들이다.

기술적인 얘기를 떠나, 큰 틀에서 바라본 이번 토론은, 신규 프로젝트가 필요한 여느 IT회사의 실제 회의실 분위기와 매우 흡사해 보인다. 토론이나 회의처럼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합의 된 자리, 주장과 의견, 논거가 치열하게 부딪치는 자에서 각자의 말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좀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치밀한 준비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번 토론은 마치 프로젝트에 가담한 개발자와 기획자, 운영자가 만든 비효율 회의의 전형적인 대참사를 보는듯 했다. 우선 '가상통화'에 대한 정의부터 명확히 하고, 합의되어야 했다. 가상인지 암호인지, 화폐인지 통화인지 등 언어가 갖는 의미와 정의, 범위가 각 포지션마다 다 달랐다.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이것만 놓고도 무궁무진한 토론이 가능해 보이지만, 어찌 됐든 토론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가상통화'라고 정리했다면 가상통화에 관한 논리와 반박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법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
출처: JTBC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감정이 깃든 제스처나 태도는 회고록이나 자서전, 개인 인터뷰 또는 소셜미디어에서 어필하면 되는데 김진화대표는 여전히 감정적이었다. 개발자 모습을 한 확신에 찬 시니어 기획자에 가까웠다. 거래소를 통해 큰 돈을 번 입장에서 ‘내가 지금 이 광풍의 원인 제공자인가’에 대한 질문의 화살을 빗겨 가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는 듯 보였다. 즉, 토론의 주제보다는 개인의 안위를 위한 주장과 근거들을 많이 찾는 모습이었다. 그로 인해 패널들도 그렇고 이번 토론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회의 중, 목소리가 떨리거나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거나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회의 참석자(개발자가 아닌)의 주장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거나 무시하는 말투, 제스처가 낯설지 않았다.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그리고 주위에서 들어본 대부분의 개발자 또는 기획자들의 회의 참석 모습은 자신의 주장은 너무나 확고한 반면, 어려운 기술적 용어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해가며 단지 그 프로그래밍 ‘안’의 논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른 발언자의 말을 끊고 본인의 의견을 개진하거나,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 무엇을 아느냐' '이것은 아느냐'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식의 질문들이 그렇다.

'수학적 증명을 왜 지금 이자리에서 해야 하는거지? 그리고 그걸 왜 너가 안하고 내가 해야 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식의 진행이라면 퀄리티 있는 토론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유작가는 알고 있었다.


현재, 의도와 다르게, 유달리 한국에서,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이게 핵심입니다
출처: JTBC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유시민작가는 프로젝트를 실제 운영하며 야기될 수 있는 많은 문제점들과 효용 등을 분석했다. 사회적 관점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문과 출신 운영자에 가까워 보였다. 사실 이번 토론 주제가 바로 그 점이었다. 블록체인 기술의 방향과 효용 등을 다루는 학술 세미나가 아니라 화두는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통화(암호화폐)를 지금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투기와 같은 광풍이 지금 정상적인 것인가(실제 모두 비정상적인 현상임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이지 '신기루'원천 기술 그 자체에 대해 얘기하자는 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유작가는 개발에 필요한 소스와 코드 하나하나, 그렇게 강조하던 '수학적' 증명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고 인정했다. 대신, 개발자들도 인정할 만큼 정말 공부를 많이 했고 준비를 상당히 해 왔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와 원리,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통화(암호화폐)의 화폐성에 관한 토론을 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이었고, 이 때문에 유작가의 주장과 논리는 제3자에게도 크게 와 닿았다. 토론다운 토론, 회의다운 회의를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비트코인 없이는 블록체인도 없습니다
출처: JTBC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정재승교수는 전형적인 개발자, CTO의 모습이었다. 차분하지만 본인의 논리에 허점이 보이면 참지 못했다. 확실한 각을 세웠고 방파제를 자처했다. 레토릭이나 문장, 문맥의 논리는 확실히 유작가에게 밀려 보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든 사례 역시 일반인 입장에서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토론 자체를 좀 피곤해 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개발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십자가를 드는 발언도 많았다. 초점이 현재 사안에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 높이 사자는 데 있다 보니 원론적인 얘기에서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김진화대표가 옆에서 워낙 강한 어조로 말해서 다소 눈에 띄지 않았지만 정교수님의 의견에는 확실한 결이 있었다.(개인적으로 상당히 존경하고 좋아하는 교수님이다)


기존에 이미 부를 축적한 국민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출처: JTBC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한호현교수는, 잘 모르겠다. 아마 주제가 가상통화(암호화폐)이기 때문에 패널로 참석하신 것 같은데, IC카드와 블록체인을 같은 라인으로 보기에는 이번 토론으로만 봐도 좀 무리가 있어 보였다. 통신사 등의 각종 포인트는 비트코인과 엄연히 다르다. 한교수님은 토론 초반, 화폐에 대한 정의와 현재 통화 시스템에 익숙해진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냐면서 화두를 던졌는데…안타까웠다. 이때부터 존망의 문을 스스로 열고 고난의 길을 걸으신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다.


배려는 다른 게 아니다

토론과 회의에는 주제가 있고, 규칙이 있다. 나와 같은 의견과 다른 의견이 공존한다. 글이 아닌 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감정적이지 않으려는 무언의 합의가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배려다. 착하게 말하고 온화한 표정을 짓는 게 배려가 아니라, 나와 다른 관점과 백그라운드를 가진 상대가 알아 들을 수 있을 만큼 준비하고 공부해서 말하는 것, 상대가 알아 들을 수 있게 바꿔 말하는 것, 지식을 뽐내지 않는 것에 있다.

오늘도 전쟁터 같은 회의실로 전투를 치르러 가는 모든 직장인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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