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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입사원 Feb 24. 2018

기본도 안 되어 있는데, 문화는 무슨 문화?!

昭雪을 위한 小說 #1


꽤 전에, 페이스북 친구의 피드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쿠팡 이야기다.

쿠팡의 리더십 원칙(일반적인 기업의 핵심가치)에는 빠른 결정과 빠른 실행을 강조하는 항목이 있다. 속도가 경쟁력인 업계에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신중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HR이 그렇다. 제품과 달리 사람은 부족하다고 일부를 바꾸거나, 기능을 다했다고 새 것으로 교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정책, 제도, 의사결정은 속도에 집착하지 말고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모든 변수에 사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쿠팡은 이 점을 철저히 간과했고, 오늘이 그 결과다.


이번엔 다른 곳 얘기다.

"우리가 뭐 문화라든지 뭐 그런 걸 인위적으로 만들고 규칙이나 약속 같은 것을 만들고 뭐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있는 대로 없는 대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게 문화가 되지 않을까요?"

오래전, 누군가 내게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일부터 열까지 설명할 기운이 없었다. 매우 힘찬 내부 회의와 외부 미팅이 연속이던 날이었다. 입사 일 년, 아니 사회생활 자체가 1년이나 되었을까. 질문자는 그랬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 젊은 꼰대가 지금 내 눈앞에 있


직장은 그저 돈을 버는 곳이었고 업은 그 수단에 불과했다. 본인의 말이, 그게 굉장히 쿨한 것이라는 듯한 태도가 조금은 불편도 했다. 동아리에서였든 학회에서였든 조별 발표에서였든, 여하튼 대학물이 덜 빠져 보였다. 쿨병에 걸린 젊은 꼰대의 모습이었다.


be-made, be-cultivated


문화는 만들어야 문화지 내버려두어서 생기는 건 문화가 아니라 습관이나 관습 정도가 될 것이다. 문화가 문란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일과, 똑같은 가치와, 똑같은 처우를 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검은 버섯은 문화를 부정하는 이들의 사이에서 아주 은연하게 깔린다. 고관여 목적 달성을 위해 만난 조직에서, 개인의 영역만큼 중요한 게 또 있는데도 말이다.


타이밍, 시기적절함


기업은 계단식 성장이라 했다. 거의 대부분의 IR 또는 사업계획서에는 비전의 성취 단계가 계단식으로 그려진다. 단계별로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고 한다. 스탭 바이 스탭에서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 못해 저물어간 작은 회사들의 케이스를 너무 많이 듣고 봐 왔다. 손때가 타지 않은 생 날 것. 조각되고 세련미를 갖춰야 할 '때'를 놓치게 되면 '노매력'이라 했다. 봄에 씨앗을 뿌렸으면 반드시 가을에 수확을 해야 하는 이치다. 시기적절함을 놓친 실패는, 처참하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좋든 싫든 다음은 이를 악물게 된다.


'다 같이 망하자는 얘기인가' 멋모르고 하는 얘기겠지 했다


문화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이다. 인간 사회나 조직 안에서의 특정 생활양식을 말하기도 한다. 저절로는 없다. 그런데, 이게 bottom-up이 가능한가. 리더의 리더십과 사상과 철학과 배경과 경험이 중요하다. 의지도 중요하다. 결국 드라이브는 리더가 건다.


쿠팡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가뜩이나 빠르게 변하는 쿠팡과 같은 곳에서는 내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지금은 어떤 지점에 있는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와 회사의 현 위치와 목표지점을 정확히 알아야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열정을 다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내게 주어진 일만 잘 하면 그만인 것은 시스템이 잘 갖춰진 회사에 해당하는 말이다. 쿠팡은 아직까지 그런 단계가 아닐뿐더러, 리더십 원칙을 통해 '내 일을 넘어선 일도 할 줄 아는' 오너십을 강조하면서 직원이 오너십을 가질 환경을 만드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일을 나눠줄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바다에 대한 동경을 가르쳐라


비전 쉐어링이 중요한 이유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다 벗기고 말하면, '이렇게 해서 돈을 벌어 볼 테니 같이 가자' '그리고 나보다 이 분야에서 네가 소질이 더 있어 연봉 주고 데려왔으니까 마음껏 플레이 해보라'를 알려주는 것이다. 때에 맞게.

사람의 실패, 즉 내부 신뢰의 붕괴와 직원들의 동기 상실이 가장 위험하고 돌이키기 힘든 시행착오라는 점은 꼭 인지했으면 한다. 작은 규모였다면 모르겠으나 이제 수천 명이 함께하는 대규모 집단이 된 이상, 체질 개선을 통해 기본을 되찾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리더십과 팔로우십의 공존. 공감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말할 것이 필요하고, 말할 곳이 필요하고, 말을 도울 자료가 필요하고,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들을 준비다. 공존과 준비가 부재한 커뮤니케이션에서 문화는 사치일 수 있다.


지금 기본도 없는데, 문화는 무슨 문화인가


기본이 선 뒤, 문화든 뭐든 만들어 갈 수 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1년 차 직원은 질문을 통해 큰 그림을 내게 슬쩍 보였던 것은 아닐까. 뭐 처음부터 문화든 뭐든 간에 전 팀원이 액수 달성을 유일한 목표로 일하는 곳, 투자를 위한 외연 불리기가 우선순위 최상단인 곳, 투자자 눈치식 경영이 자연스러운 곳, 경영진의 이니셔티브가 전혀 없는 곳은 논외다. 그런데, 업계에 참 이런 곳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눈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시간이 꽤 지나고 나니, 그의 말에 일정 부분 동의가 됐다.


문화가 지금 여기에 꼭 필요한가. 기본도 없는데.



昭雪(소설): 원통한 죄나 억울한 누명 따위를 밝혀 씻음

小說(소설):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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