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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입사원 Feb 26. 2018

신입사원이 이틀 만에 떠났다

昭雪을 위한 小說 #2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차갑게 식었다. 벌써 두 잔째다. 우리의 이야기는 무르익어 갔다. 입안에 쓴맛이 도니 집중력이 높아졌다. 처음부터 느낌이 쎄~했다고 했다.


回歸(회귀)

내 앞에 앉아있는 이분은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현재는 한 기업의 브랜딩을 책임지고 있는 실무자다. 햇수로는 3년 차 현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수의 이직 경험과 특이한 경력으로 종종 도움을 청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들을 때 찾곤 했다.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생각하니 절망적이었어요. 처음에는 한 명이 문제였어요. 겉으론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지지했지만, 속으로는 밥그릇이 작아진다고 생각했었는지,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불만이 표출되더라고요.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죠. 이대로만 가면 차곡차곡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데, 모험과 도전은 위험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세일즈나 마케팅, 서비스 운영을 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매출을 입에 달고 살았죠. 하물며 사업부 일에는 전혀 인볼브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용역대금과 자문료 등 제일 많은 코스트를 부담하고 있는 팀의 장이었음에도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였을까  노골적으로 인건비라는 워딩을 써가며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인당 매출로 효율을 보자면, 상당히 좋은 성과를 내는 회사입니다. 상스러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 사무실에서 툭툭 내뱉는 C8과 dogbaby는 인사처럼 정겨웠습니다. 끝내 반경 10M 안의 직원들 모두가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죠. 가능성이 있었을 때는 몇 번 메신저로, 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들이 욕 좀 그만하라고 얘기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거꾸로 돌아가고 있거든요. 결정적으로, 떠났던 직원이 다시 돌아와 한 부서의 팀장이 되더라고요. 희망과 기대가 없어진 게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봤는데,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느낌이 쎄~한 게, 아니나 다를까 최악의 사건들이 터지게 됩니다.

나는 30대 중반의 남성, 앞서 소개된 이분이다.

아무리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들, 제 발로 떠난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게 경험적으로 터득한 느낌적인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에는 분명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재합류를 한사코 고사하던 그였기 때문이다. 삼고초려도 이런 삼고초려가 없었다. 앞서 말한 욕쟁이 팀장이 대대적으로 추천을 했다고 들었다. 둘이 죽이 잘 맞아 보였다. 이 모든 절차는 비공개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창의적 채용

어느 날 출근을 해서 보니 새로운 팀장이 와 있었다. 프리랜서 출신이자 현재 회사가 운영 중인 플랫폼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오픈 멤버와 같다고 보면 된다고 본인을 소개했지만 별로 중요해 보이진 않았다. 왜 나가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다 상관없었다. 와서 일만 잘해주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팀 세팅을 해야 한다며 하루아침에 몇몇 팀원들이 부서가 바뀌게 되었다. 몇몇 리크루트 사이트의 ID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채용을 해야 한다며 스스로 공고를 냈다. 부서가 바뀐 팀원들은 모두 회사를 떠났다. 채용을 직접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라 그런지, 창의적인 채용의 연속이었다. 전화로 면접을 본다던지, 3차 면접이라는 공식적인 프로세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차 면접 한 번으로 최종 합격 통보를 한다던지, 경력을 후려치며 연봉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고 자랑을 한다던지 등 채용 공고 직무소개 오탈자 정도는 애교로 보였다.


리스크

그렇게 채용된 직원이 이틀 만에 여긴 아닌 것 같다며 회사를 떠났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지만 그에겐 아니었다. 굉장히 기대가 컸었나보다. 나갈 사람은 나간다는 둥,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변덕이 심하다는 둥 이상한 얘기로 나의 귀를 괴롭혔다. 이건 뭐지 싶었다. 마케팅팀과 PR팀에서 어렵게 구축해 놓은 브랜딩 접점들이 일순간에 리스크가 되어 돌아왔다. 사내 분위기는 이미 최악의 정점을 찍었다. 아무도 티를 내고 있지 않았다. 각자 일만 열심히 하는 척하다 퇴근하면 그만인 분위기였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무거움이, 탁하고 어두워져 갔다. 처음 이 회사에 합류했을 당시의 공기, 모든 것이 그때로 회귀했다. 그땐 그나마 해보자는 젊은이들의 패기라도 있었다.


손이 가는 채용

인사권을 부여받았다고 했다. 본인의 팀을 꾸릴 수 있게 딜을 했다고 하는데, 시스템까지 이관될 줄은 몰랐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욕쟁이 팀장이 거들었다고 했다. 깊은 빡침이 한숨과 씰룩이는 코웃음으로 승화됐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놨다. 나보다 나이 어린 젊은 선수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월급이 아니라면 재미라도 주고 싶었다. 업계를 넘어 세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갔다.

채용. 특히 면접 자리는 한 개인에게 일생 최대의 선택이자 기회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기업에게도 성장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여 필요한 파트너 또는 인재와 마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요한 기회 중 하나다. 기업에 대한 첫 이미지와 경험이 아주 날 것으로 보여질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요즘 같은 다채널 시대, 자연스러운 홍보와 위기관리가 한꺼번에 필요한 손이 많이 가는 작업 중 하나다. 그래서 HR, 특히 채용과정에 기업 홍보담당이 관여하거나 업무 자체를 겸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때론 마케팅도 달라붙었다. 페이스북 스폰서 광고나, 리크루트 업체와 콜라보 하는 경우도 심심찮았다. 브랜딩을 서서히 구축해 가고 있었다. 소소하지만 성과도 눈에 보일 시기였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신선한 면접, 꿈이었으면

지원자가 예고 없이 노쇼(no-show) 한 경우는 많이 봐왔다. 그런데 면접관이 면접 일정을 잊고 노쇼한 경우는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더 기가 막힌 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팀에 면접관 대행을 부탁했다고 들었다. 술을 잘 먹는지 물어보면 되느냐고 농담 따먹기를 했단다. 더욱 가관인 것은 면접 대행이 성사되었다는 것에 있다. 새로 온 팀장과 욕쟁이 팀장의 극적인 딜이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창피했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입사원이 그 광경을 목도했단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소중했던 곳이 점차 수준 이하로 변질되어 가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입 지원자는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이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1:1 면접이다. 앳된 얼굴의 지원자는 얼마나 준비하고 연습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걸음 했을까. 첫 직장이 될 수도 있는 회사를 이것 저것 알아보며, 기대반 설렘반으로 왔을 지원자는 어떤 경험을 하고 돌아갔을까. 커피잔을 받는 지원자의 미세한 떨림을 보았다. 자랑스럽게 추천하던 회사가, 어느 순간부터 숨기고 싶은 회사가 되었다.


프리랜서가 모르는 것

인사가 만사라는 말보다 더 현실감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식상하지 않은 말에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역설적이게도 비용이다. 왜곡된 첫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들이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그나마 회복이라도 되면 다행이지만 시간이 또 발을 잡는다. 꼭 비용 문제만은 아니다. 인재와 함께 할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는 곳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면접은 약속이고, 사람을 만나는 자리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사람을.

무게를 견딜 수 없거나 방식을 모르면, 배우거나 도움을 빠르게 청하면 된다. 그게 함께 일하는 묘미이자 회사에서 일하는 장점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 아는 선에서 대충 넘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것이 반복되면 동료의 일에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히게 된다. 매일을 보고 함께 일해야 하는 식구의 마음이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서라도, 대충 넘기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축적은 기본이다. 누적된 게 없으면 실패를 쌓을 필요가 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실패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일이라는 것이 결국 저 위에서는 한 점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프리랜서는 모를 수도 있다. 프로젝트 단위 이상의 것을 꿈꿀 수 없다. 빨리 꿈에서 깨어나라고 했다.


하향평준화에 관한 소설

이 스펙터클한 이야기는 또 다른 소설로 이어졌다. 바통은 또 다른 이분이 받았다. 이분은 하향평준화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하향평준화된 기준을 서로에게 맞추며 '좋은 게 좋은 거'가 팀워크가 아니라, 좀 더 높은 지향점을 함께 바라보고 힘들더라도 힘듦의 무게를 같이 견디어 내는 게 팀워크라고 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였다.

때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昭雪(소설): 원통한 죄나 억울한 누명 따위를 밝혀 씻음

小說(소설):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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