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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입사원 Jul 06. 2017

열망에 관하여

철학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나는 이게 하고 싶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고차원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수준 이하였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맹이가 없었고, 방법도 거칠고 서툴렀다. 알맹이가 무엇인지 다양한 각도에서 물으면 되려 화를 냈고, 끝내 욕까지 뱉어냈다. 결국 대화에 참여한 모두를 수준 이하의 부류로, 결국 그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그저 그런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었다. 결국 열망에 관한 이야기가 저 한마디로 수준 이하의 시간낭비가 되었다. 찾아 봤는데, 열망의 사전적 의미는 '열열하게 바람'이다.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이야기로 시작한 것 같다. 버킷리스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 갔다. 지금 당장 할 수 있지만 그 어떤 두려움에 막혀 주저하고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사직서를 내고 세계 여행을 떠난다든지, 썸을 타는 이성에 고백을 한다든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책만 본다든지. 그런 이야기가 버킷리스트 차원을 넘어서 능력의 부재로, 자원의 부족으로, 시공간적 차원의 제약으로 지금 당장 할 수 없지만, 정말 열망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 번졌다. 예를 들어, 섬을 하나 사서 학교를 짓고 농사일을 하고, 에어비앤비에 숙박공유를 하며 그럭저럭 살고 싶다라든지, 결혼은 하되 아이는 없이 배우자 합의 하에 평생을 둘이 살고 싶다는 열망이라든지. 그럴 의도의 대화는 아니었지만, 여기서부터 사람의 깊이와 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너지와 매력도가 나름의 기준에서 정렬이 되었다.


세계 여행을 따나고 싶다는 A에게 진심을 다해 열망하는 것이 세계 여행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A는 그렇다고 했다. 그럼, 그정도로 열망하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A는 지금 당장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돈과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게 정녕 열망하는 것을 가로막는 벽이냐고 물었다. A는 그렇다고 했고, 시간과 돈, 둘 다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내가 말했다. A는 눈을 반짝이며 그게 뭐냐고 물었고, 나는 사직서를 내라고 했다. A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럼 난 뭐를 먹고 사냐고 물었다. 그것은 내가 답할 문제는 아니라 했고, 열망하는 것을 꼭 이루고 싶지만 가로막고 있는 것이 정녕 시간과 돈이라면, 사직서를 내 시간을 벌고 퇴직금으로 플랜을 짜고 여행을 떠나보라고 했다. 여행을 다녀온 뒤, 또 지금과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시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다면 열망하는 것을 이루는 게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열망이 있어서 부럽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A는 기분이 상한듯 끝에는 버럭 소리까지 지르며 화를 냈다. 욕도 했다. 그러면서 세계 여행하고 싶다는 게 뭐가 그리 잘못된거냐며, 이런 철학적인 얘기를 우리가 왜 하고 있냐는 식으로 대화 자체를 잘라버렸다. 순간 벙쪘고, 대화 참여자들은 일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화를 낸 것이, 어떤 포인트에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이해는 했지만, 태도와 말에서 실망스러웠다.


열망에 가치서열이 있을까. 어떤 열망은 좀 더 고차원적이고, 어떤 바람은 좀 더 가치가 있다거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A가 화가 난 포인트가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순간 폭발했을 수도 있겠거니 속으로 어림 생각했다. 열망을 이루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플랜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가 등에 대해 더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이야기가 발전되지 못했다. 그리고 송두리째 A말에 따르면 '철학적이고 고차원적인' 열망에 관한 이야기가 멈춰'졌다'. 기분이 썩 좋지 못한 이유는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던 그룹이냐며 비아냥대던 그 말의 의도가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아서다. 무엇이 문제인가. 항상 그렇고 그런 여자 이야기, 남자 이야기, 사람 이야기, 게임 이야기, 영화 이야기, 이런 저런 이슈들에 관한 이야기만 여태 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들만 해야하는 것인가. 그게 맞다면, 참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그게 맞다면 아마도, 다시는 A와 술자리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손윗사람이든 손아랫사람이든, 말을 하고 듣기 위한 준비는 피차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A에 대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람 좋아하고 노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아 하는데, 일로 알게된 사람과의 어울림 자체가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복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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