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입사원 Feb 19. 2017

누구와 일 할 것인가

"일의 80%는 커뮤니케이션"

사실, 남들보다 늦게 취업을 했는데 일이라는 것이 밖에서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정대로 차례차례 퀘스트를 깨 나간다는 느낌이랄까. 전공이나 주특기가 발현되는 경우는 내 전체 업무 중 한 20%?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말을 하거나 이메일을 주고받는 행위가 내 업무의 80%를 차지합니다.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룹사의 핵심 계열사 중 일명 노른자 부서에서 일하는 3년 차 직원의 말이다. 출근을 한 뒤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켜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나 역시 업무용 메신저 접속이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누군가의 말에 대꾸하는 것, 그리고 밤 새 온 이메일을 확인하는 일부터 하루는 시작된다.

지금이야 번듯한 책상과 의자에서 듀얼 모니터를 활용해 한쪽에는 이메일을, 다른 한쪽에는 메신저를 켜놓고 정리하며 누군가의 글과 말에 대응했지, 불과 1여 년 전만 해도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기업의 작은 기자실이나 길바닥이나 커피숍이나... 나만의 아지트에 박혀 딱딱한 글자와 글들을 확인했었다.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것. 이게 일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것은 새롭지도 않다. 중세시대 장인들 마저도 동네 비렁뱅이와 주정뱅이들로부터 아이템의 영감을 얻었다 했다. 수개월 동안 장인정신을 발휘해 힘들게 만든 제품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팔려야 한다. 시장에서 기능을 해야 한다는 얘긴데 그래야 장인도 먹고 살 수 있다. 업무에 있어 장인과 위에서 언급한 3년 차 직원의 차이는 20%와 80%, 전공 또는 주특기의 업무 반영 비중이다. 중세와 지금은 너무나도 상황이 다르다. 산업화와 분업에 따른 생산성과 효율성의 시대,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주주와 리더 또는 오너의 시대를 더욱 견고히 한다. 학문적인 접근이나 철학적 사유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일단은 살아보는 흉내라도 내야 좁디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전공과 주특기만을 하기 위해 직장에 간다? 전공과 주특기와 자격증을 보고 함께 일 할 동료를 구한다? 둘 다 시대와 맞지 않는 얘기다.


진부하고 누구나 다 아는 이 이야기를 꺼내어 생각해보는 이유는 그렇게 중요하다는 직장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접근을 조금 다르게 하면 일을 좀 더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나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그 사람이, 메신저 대화 속 저 사람이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지만 일에 대한 태도와 자세는 그래도 알 바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KPI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무엇보다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할 입장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싶다 아니다 정도, 아 저 사람은 이번 일이나 프로젝트에 이런 자세나 태도를 가지고 나와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는 굉장히 머랄까 인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기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특히 이제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든 청년들과 일이 손에 익혀질락 말락 하는 정도의 연차를 누적한 동료들, '3-6-9 고비고개'를 넘고 있는 우리네 동료들이 공감했으면 한다. 그동안 6년 가까이 다양한 업직종에서 만난 인간군상들의 모습과 그들로부터 받은 영감과 경험을 한 자 한 자 녹여 본다. 첫 번째 단상은 좋든 싫든 누구나 해야 하는 직장 커뮤니케이션의 결정체, 회의다.


회의에 참석한 인물들을 한 명씩 차례로 살펴본다. 일한 지 3~5년 이상 된 그룹 <1그룹>, 일한 지 1~2년 정도 된 그룹 <2그룹>, 그리고 누가 봐도 수습을 이제 막 땐 3~4개월 차 또는 1년 미만의 그룹 <3그룹>, 마지막으로 입사한 지 2개월 차 정도의 신입그룹 <4그룹>이 보인다.

<1그룹>은 이 회의의 목표 또는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포인트를 잡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려 한다. 본격적인 일은 회의 이후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보이고, 무엇보다 회의에 참석하는 자세가 적극적이다. 때론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알아차릴 때 희얼같은 것도 느끼는 듯하다. 일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조금씩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하지만 주장이 세고 그만큼 근거도 강하다. 상대를 배려하는 듯 하지만 결국 원하는 대로 회의를 이끌어가고자 리소스를 총동원한다. 그래서 간혹 언성이 높아지고 때론 고압적이 되지만, 회의장을 나오는 순간부터 없던 일이 된다. 의외로 연차 어린 선수들보다 쿨하다.


반면 <2그룹>은 소극적이다. 말 수 자체가 적어지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빈도가 많아진다. 듣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자꾸 적는다. 계속 적고 쓰고.. 또 쓰고 쓰기만 한다. 본인의 얘기나 의견은 없는 경우가 많고 계속해서 적기 바쁘다. 그리고 회의가 다 끝나면 한숨을 그 누구보다 깊게 내쉰다. 회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그룹이 이 그룹인 것 같다. 가장 이탈률이 높은 연차. 이직 시장에서 소위 가장 잘 팔린다는 그 연차다. 과거에는 3~4년 차를 선호했다면 이제는 1~2년 차로 그 대상이 낮아졌다. 어느 정도 가닥은 잡혀있어 시키는 일은 곧 잘 해내지만 전문적이지는 않아 요리저리 돌려 까기에 속수무책하는 바로 그 연차. 이들이 회의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는 사실 <3그룹> 때 시작되어 유지보수를 거친 뒤 더 굳건해지는 경우가 많다.


<3그룹>은 도사 같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아니면 모든 것을 다 모른다는 듯한 아리송한 태도와 뚱한 표정이 일단 압권이다. 유구무언. 함구하는 자세는 이때부터 생긴다. 이게 길게는 1년 정도 지속된다. 업에 대한 다양한 얕은 지식을 습득하고 삼 개월 또는 일정기간 힘들게 팀 업무를 팔로우하고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업계 용어 몇 개를 숙지하며 일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솔솔 차오를 때다. 회의가 끝나고 일이 만들어진다는 기대는 일 자체의 업무 로딩으로만 보이고, 팀 또는 회사와 거리를 두며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조용히 혼자 일하고 싶어 하고 내 일과 내 일이 아닌 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마치 업무성과로 직결되는 치트키 정도 되는 줄 아는, 야릇한 지적만족을 보이게 된다. 나는 이 일을 하려고 왔고, 부여된 업무가 이거고 그렇지 않은 팀이나 부서의 일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팀원이라는 생각은 서서히 지워지고 꼬여버린 생존 의식이 회의의 퀄리티를 낮춘다. 최악은, 마치 대학 재학 시절 학과회의나 동아리 회의에서 나올 법한 염세주의적 또는 대충 흘리는 식의 자조적인 말들이 툭하고 입에서 나올 때다. 일종의 중2병과 유사한 심리 상태인 것으로 추측된다. 가족은 사춘기 중2병을 병으로 인정해주지만, 여기에 가족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기존의 팀원들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을 '제대로' 된 새로운 팀원으로 인정하기 어렵게 된다. 엄청난 반전이 없는 한.


놀라운 것은 <4그룹>이다. <4그룹>은 1그룹과 똑같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이다. 회의의 목적을 너무나도 충실히 따르고, 공감의 리액션 등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있고 자신감도 있다. 의견을 개진하고 뒷받침하는 방법이나 톤 앤 매너가 정제되지 않은 생 날 것 같아서 그렇지 3개월 차보다 훨씬 회의다운 회의를 한다.

물론 각 그룹에 속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똑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특히 연차가 적고 젊은 그룹일수록 그런 차이는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케바케라는 것. 이런 걸 보면 많이 안다고 해서, 경험이 많다고 해서 회의를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더 성숙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각기 다른 천성과, 학창 시절 보고 듣고 배우며 어울렸던 각기 다른 또래와의 시간과 경험들이 일을 대하는 가치관을 만들고, 그런 차이가 직장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취업에 대한 갈망이나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나 다 절실하고 강렬하기 때문에 잠시 가려져 있었던 것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생각이다. 지난 6년의 경험과 듣고 봤던 얘기들의 정리에 불과하다. 경력 지수에 따른 구분이 거칠어 보이지만, 편의상이지 저 연차의 전형이라는 것은 아니다. 6년도 차지 않은 경험이라 내가 생각해도 좀 웃기기는 하다.

그래서 문화는 중요하다. 그런데 문화도 중요한 것이지 문화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요즘 간혹 보면 특히 스타트업이나 젊은 창업가들이 주축이 된 조직일 경우, 외부에서 볼 때 밝고 편하고 쿨한 문화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경우가 많다. 실제 안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지는 함께 일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이 때문에 이런 조직에서 일을 하고자 합류한 무경험자들의 경우, 대게 1년을 버티지 못한다. 왜? 화려하고 멋지고 쿨할 것 같은 그놈의 문화를 보고 왔는데 어느 순간 이 문화를 누리기 위한 자격이 과연 나에게도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변화에 적극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않다면 자괴감은 더 클 것이 뻔하다. 대게 이렇게 이탈한 사람들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 기업은 보수적이라는 둥, 복지는 허울이고 실제는 다르다는 둥 불만 아닌 불만을 갖게 된다. 함께하고 싶다며 보여주었던 열의 그리고 자질과, 팀에서 기대하는 기대치의 갭은 생각도 않고, 팀 커뮤니케이션 또는 팀의 가치를 내재화하는 작업 또는 시도는 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사실 팀 컴이나 가치의 내재화가 무슨 필요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작은 규모의 팀 또는 조직에서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가치이자 업무 스타일의 포인트가 된다. 구성원의 가치관과 업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그 기업의 문화가 된다는 점에서 개개인의 성향이 드러나기 쉬운 작은 조직일수록 가치관이 바로 선 올바른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한다. 그래서 인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되도록이면 팀에서 원하는 사람을 채용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팀과 어울리는 사람, 핏이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지 크게 차이 나지도 않는 능력을 가지고 왈가불가하는 것은 서로가 피곤할 따름이다.

문화는 제도와 달라서 억지로 잡는다고 잡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함께 하는 구성원의 생각과 말과 태도가 그 조직의 DNA를 만든다. 아이덴티티, 즉 기업의 정체성을 만드는 하나의 기둥이 된다. 직장에서 생각과 말과 태도가 가장 잘 발현되는 곳, 메신저도 아니고 이메일도 아니다. 바로 회의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