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다(Gay + Radar), 들어보셨나요?
미국인들이 있는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팀에는 항상 동성애자 동료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사는 곳이 LA다 보니, 동성애자 친구들도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한국에 살 때는 한 번도 그들과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미국에서는 매번 같이 일을 하게 된다는 게 처음에는 참 신기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더 오픈 마인드로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어, 지금도 감사하다. 미국에 살면서 꼭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난 그들의 특징은 굉장히 꼼꼼하고 섬세하다는 것이다. 감정적으로도 매우 섬세해서 내가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에 대해 정말 잘 공감해 준다.
어느 날은 내가 남편과 크게 싸우고 감정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다음 날 회사에 가게 됐다. 기분이 아무래도 다운되어, 같이 있는 동료가 느꼈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좀 그래, 라고 털어놨더니, 그 친구 왈,
희한하게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걸 털어놔. 내가 상담을 좀 잘해주나 봐. ㅋㅋㅋ
그러면서 나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어루만져주면서도 당시 남편의 상황은 이랬을 거다, 라고 얘기해 주었다. 사실, 남편 험담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듣는 건 기분이 참 그렇다. 물론, 그 험담을 내가 시작했을 거고, 내 편을 들어주기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남편에 대한 안 좋은 말을 남에게 듣고 싶지는 않은, 참으로 이상한 논리다.
어쨌든 그날 그 대화 이후, 우리는 좀 가까워졌다. 그리고 좋아하는 남자 이상형에 대해 공유하며 더 친해졌다.
새로운 팀 멤버가 조인하게 됐다. (사실은 위에 상담 잘해주는 저 친구다.)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도록 몰랐다. 처음에는 아직 친해지기 전이라 모두가 조심하기도 했고, 아무래도 민감한 토픽이다보니 굳이 얘기하지 않았던 것. 그 와중에 눈치 없는 나는 그 친구가 동성애자일 줄은 그냥 상상도 못 했고. ㅋㅋㅋ
그러고는 몇 달이 지났다. 어느 날, 그 새로운 동료와 내가 한 테이블에 앉아 어떤 문제에 대해 논의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또 다른 동성애자인 우리 팀 동료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Good morning girls!
어머. 왜 얘한테 girl이라는 거야? 당황했지만 워낙 농담을 잘하는 친구니 농담했나 보다 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 후 똑같은 말을 또 다시 듣게 됐다. 그제서야 나는 '이 친구가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혹시나'는 '사실'로 드러났다!
후에 우리는 모두가 친해져 자연스럽게 '그 얘기'를 하게 됐다.
A: 너는 B가 동성애자인지 알았어?
나: 전혀 몰랐어. C가 나랑 B가 같이 있었는데 Good morning girls!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A: WHAT? 그런 일이 있었어? 진짜 너무 웃긴다!!!!! (C에게) 너는 처음부터 알았어?
C: 당연하지. 얘를 줌으로 처음 인터뷰 할 때부터 알았어.
A: 나는 그게 안돼. 게이다(Gaydar - Gay+Radar - 게이와 레이더의 합성어로 상대방이 게이인지 아닌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채는 능력)가 없어서 그게 안되더라고. (D에게) 너는 동성애자들을 바로 알아채?
D: 당연하지. 우리는 한 번 보면 알아.
나: 와우... 나는 '게이다'라는 말도 처음 들었어. ㅋㅋㅋ
그들은, 이제 그저 사랑스러운 나의 팀 동료일 뿐이다. 성별을 굳이 나눌 필요조차 없는. 그 둘 중 한 명이 우리 팀을 곧 떠난다. 더 좋은 기회를 잡아 더 높이 높이 뜀박질을 할 준비를 하는 거다.
그 친구는 내가 처음 이 팀에 조인했을 때 영어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자,
영어가 다가 아니야, 너는 잘하고 있어. 나도 여태껏 직장 생활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서 알아. 너는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하고 늘 나를 다독여준 친구다. 하... 눈물 나려고 하네? ㅎㅎㅎ
뭐, 이제, 그는 나의 첫 번째 게이 친구가 되는 거지 뭐.
훨훨 날아라 John!
*상단의 커버 이미지: Photo by James A. Molna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