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vs콘도그, 바베큐vs비비큐, 코크vs콜라, 크레입vs크레페
남편: 다저스 구장에 오면 뭘 먹어야 하는지 알아?
나: 뭘 먹어야 하는데?
남편: 핫도그!!!
나: 엥? 이게 무슨 핫도그야!
그렇다. 사실 이게 핫도그다.
우리가 생각하는 핫도그는 꼬치에 끼운 소시지에 옥수수(Corn) 가루 반죽을 입혀 튀긴 후 설탕을 듬뿍 바르고 그 위에 케첩을 뿌려 먹는 '콘도그(Corn Dog)' 였던 거다.
그럼 미국의 핫도그는 뭐냐? 위의 사진처럼 소시지를 길쭉한 번(Bun)에 끼우고 피클이나 양파, 머스터드, 케첩 등을 잔뜩 뿌린 것으로, 야구장, 길거리, 영화관 등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남편이 말한 LA 다저스 구장의 핫도그, 이른바 다저독 (Dodger Dog)은 특히나 유명하다. 다저스 구장을 가면 꼭 먹어봐야 할 대표 음식으로, 길이가 무려 10인치나 되는 이 핫도그는 일반 핫도그보다 훨씬 크고 푸짐하다. 전설적인 LA 다저스 스포츠 캐스터였던 빈 스컬리(Vincent Edward "Vin" Scully)는 "다저독은 다저 스태디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의 일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다저스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시그니처 메뉴다.
한국에서는 미국식 핫도그를 흔히 볼 수 없는 반면, 미국에서는 오히려 콘도그를 자주 보기가 어렵다. 미국에서는 핫도그가 간편한 식사 대용으로도 자주 소비되는 반면 콘도그는 간식이나 어린이용 메뉴로 인식되는 듯하다.
샌디에이고에 내가 정말 너무너무 좋아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이름하야 Phil's BBQ. 다음날 이곳에 가기로 했던 지라 너무 신이 난 나는 방방 뛰며 말했다.
나: 필스 비비큐 진짜 얼마 만에 먹어보는 거야. 빨리 먹고 싶다!!!!
남편: 필스 비비큐가 아니고 바.베.큐! 왜 한국인들은 BBQ를 비비큐라고 읽는 거야?
나: B.B.Q라고 되어 있잖아. 그대로 읽은 거야.
남편: BBQ는 Barbeque의 줄임말이야. 그래서 읽을 때는 바베큐라고 읽어. 비비큐는 한국 치킨브랜드 아니야??
그렇다. 비비큐는 한국 치킨 브랜드였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BBQ를 비비큐라고 읽는 한국인들이 꽤 있었나 보다. ㅋㅋㅋ 치킨 브랜드가 너무 익숙하다 보니 그만...
남편: 음료는 뭘 먹을까?
나: 나 갑자기 오랜만에 사이다가 땡기는데?
남편: 네가 생각하는 칠성사이다를 여기서 '사이다'라고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어.
나: 엥? '사이다' 영어 아냐?
남편: 응, 근데 네가 생각하는 그 칠성사이다는 미국에서는 '스프라이트' 아니면 '세븐업'이야.
나: 헉... 그 스프라이트가 사이다였어???
남편: -_- 사이다가 아니라니까...
음료를 잘 마시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다행히 한 번도 레스토랑에 가서 서버에게 "사이다 플리즈"를 외치지 않았으니. 그럼 또 서버는 내가 말하는 '사이다'가 뭔지 알아내어 비슷한 음료를 주기 위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을 것이며, 나는 또 얼마나 버벅거리며 헤맸을지 눈에 훤하다. 그러고는 결국 그냥 됐다고, 물을 마신다고 했겠지...
미국에서의 사이다는 보통 탄산은 없고 단맛이 많은 사과주스를 말하거나, 하드 사이다(Hard Cider)라고 하면 사과로 만든 알코올음료를 말한다. 이 둘 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사이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나: 햄버거에 콜라 추가해서 먹어야겠다.
남편: 주문할 때 또 '콜라' 주세요 하지 말고, Coke 달라고 해야 돼!
나: "콜라 주세요" 하면 어떻게 돼?
남편: 그럼 직원이 Which one? 할걸? 펩시? 닥터페퍼? 코크? 이렇게.
나: 엥? 콜라 뜻이 뭔데?
남편: 음... 누가 그렇게 말하면 탄산음료를 말하는 거겠거니... 하고 알아듣긴하겠지만, 사실 콜라라는 말 자체를 거의 안 써. 만약에 진짜 탄산음료 전반을 그냥 말하고 싶으면 '소다'라는 단어를 쓰지. 코카콜라라는말도 거의 안해. 그냥 Coke.
나: 그럼 "Coke 주세요" 하면 코카콜라를 줘 아님 펩시를 줘?
남편: 대부분은 코카콜라를 줘. 만약에 내가 Coke를 달라고 했는데 그 식당에 코카콜라가 없으면, '우리는 펩시밖에 없어요. 그거 드릴까요?'라고 물어봐.
나: 아... 코카콜라가 그냥 뭐 국민 음료수네.
이건 한국인들도 이제는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콜라 주세요"하지 말고, "Coke" 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 나에게도 어느덧 익숙해져서 Coke가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최근 들어 내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사실은, 내 주변 미국인들이 Diet Coke 혹은 Coke Zero도 많이 마신다는 사실이다.
저게 효과가 있긴 한 건가? ㅋㅋㅋ 미국인들은 참 모든 것에 본인들의 취향이 있고, 본인이 원하는 바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인 것 같다. 취향 같은 거, 선호하는 것 딱히 없는 나에게는 참 신기한 일.
나: 나 예전에 크레페(Crepe)를 한 번 먹었는데, 그 집 완전 우리한테 바가지 씌운 거 있지.
미국친구: 크레페? 그게 뭐야?
나: 그거 있잖아. 이렇게 얇은 팬케익 같은 건데, 안에 과일이나 크림, 초콜릿 이런 걸 넣어서 돌돌 말아먹는 디저트.
미국친구: 아. 크레입말하는 거야?
나: 아 응응 크레입 크레입!! (헉. 발음이 크레입이었나 보네 ㅋㅋ)
사실 영어 단어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게 참 많았다.
왜 콩글리쉬가 탄생했을까?
문화와 언어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다보니, 종종 이런 근본적인 질문도 던져보곤 한다. 결론은, 문화와 시대가 만든 언어의 혼합물이라는 것.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영어 표현(쓰레빠, 난닝구, 아르바이트 등)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을 것이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국의 영향이 커지면서 영어가 곳곳에 침투했을 거다. 하지만 영어는 한국인이 발음하기에는 어려우니 우리들이 말하기 쉬운 방법으로 변형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가끔씩 남편은 "한국에서는 왜 쓰레빠라고해? 슬리펀데?ㅋㅋㅋ" 이렇게 놀리곤 하지만, 어느 문화권을 가든 외래어는 그 나라의 방식대로 로컬라이즈(localize)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이런 단어들을 진짜 영어라고 믿고 썼다가 당황하는 상황들이 생길 뿐!!!
이제 미국 온 지도 10년이 넘었으니, 부끄러운 상황들은 좀 그만 생겼으면 좋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