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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죽겠는데 괜찮다고 말한 의사가 괜찮지 않은 이유

미국 병원에서 쉽게 처방받은 약, 알고 보니 향정신성?

by Fresh off the Bae

때는 2020년. 언제부터인가 기분 나쁜 복부 통증이 나를 덮쳐왔다. 통증은 먹는 음식과는 상관없이 아주 랜덤 하게 왔는데, 공통점은 새벽 1시쯤 어김없이 시작해 거의 5시까지 네다섯 시간을 내리 쪼아 왔다는 것이다.


결국 어렵사리 찾은 한인 주치의를 찾아갔다. 병원 가기 전 주변에서는 ‘엄청 아픈 척을 하며 떼굴떼굴 굴러야 겨우 리퍼럴(진료의뢰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렇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리퍼럴을 남발하지 않는다.


증상이 있어야만 검사를 위한 혹은 스페셜리스트(전문의)를 만나기 위한 리퍼럴을 써주고, 예방적 차원에서는 리퍼럴을 써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 건지 찾아내야 했기에, 제발 여러 가지 검사를 해주기를 바라며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도 당시 주치의는 복부 초음파를 받아볼 수 있는 영상진단센터와 위장내과, 심장내과에 리퍼럴을 써줬다. 영상진단센터는 내가 오래전 한국에서 초음파를 받았는데, 쓸개에 돌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더니 리퍼럴을 써준 것이다.


아니, 쓸개에 돌은 나이 든 사람한테만 생기는 건데 어떻게 하다 담석이 생겼어요?


이때 이 의사… 알아봤어야 했다. 담석증은 젊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정말 많이 증가하고 있는 질환이었는데 말이다.


심장내과는 다소 뜬금없을 수 있지만, 내가 '통증이 오면 숨 쉬기가 힘들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심장내과까지는 생각 못 했지만, 나는 고질병이 있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이 아프고, 호흡이 힘든 증상이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증상이긴 했지만, 회사에서 하루 종일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받다가, 퇴근하는 즉시 호흡곤란 증상이 시작돼 집에 도착할 때까지 지속됐다. 희한하게도 집에 들어가면 증상은 사라졌다. 우연히 스트레스로 인해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는 친구와의 대화로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회사를 그만둔 뒤 그 증상은 사라졌다.


나는 그때의 증상과 내 복부 통증이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숨을 쉬기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단순 스트레스로 치부하고 병원 방문을 늦춰왔었다. 그리고 의사에게도 이 내용을 공유했다.


큰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 알프라졸람을 처방해 줄까요?


정신과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지, 의사는 나와의 첫 만남에 이 약을 제안했다. 아무 검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다시 말 하지만 ‘첫 만남’이었다. 당시 나는 처음 들어보는 그 약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지라 처방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거 Drug이야!!! 제대로 검사도 안 하고, 네 말만 듣고 저 약을 줬다고?


그 약을 본 남편은 분노했다. 정말 눈과 입에서 용암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Photo by Jeferson Argueta on Unsplash


알고 보니, 알프라졸람은 처방약이긴 하지만 항불안제로 장기 사용하면 의존성이 생길 수 있고 부작용도 있을 수 있는 약이었다. 법적으로 마약은 아니지만,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고 그만큼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약이었던 거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나에게는 처음 들어보는 약이었지만, 미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약이었던지라, 남편은 이름만 보고 기겁을 한 거다. 선생님, 의사, 상사 등 어른들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여겼던 바보 같던 나는 찰떡같이 의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아니 뭐 의사가 처방을 해준 거니까, 잘 듣는지 어떤지 한 번 먹어보고, 약이 안 들으면 그때 다시 병원을 가볼게.
남편: 아니, 이거 DRUG라고!!!!!!!


남편은 필사적으로 나를 막았고, 이는 곧 언쟁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손을 들고 항복한 나는 그 약 먹기를 포기했다. 아직까지도 남편은 얘기한다.


나는 안 믿고 처음 보는 의사 말만 믿었지?!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그 의사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떤다.




심장 내과는 아주 간단한 검사만 한 뒤, 심장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했고, 위내시경은 약간의 궤양이 있지만 심각하지 않은 정도라고 했다. 복부 초음파 상에는 여전히 쓸개에 돌이 있다고 나왔다. 주치의는 해맑게 웃으시며 얘기하셨다.


담석이 있긴 한데 큰 문제는 없어요. 괜찮아요.


마치 좋은 소식을 전해주게 되어 너무 기쁘다는 어조였다. 나는 그 전날에도 통증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는데 말이다. 약 처방으로 인해 남편과 언쟁까지 겪으면서 의사의 처방을 믿으려고 했던 나인데, 책임감 없는 그의 말에 신뢰가 뚝 떨어졌다.


그럼 난,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왜 아픈 거야?


나는 내 이상한 증상에 대한 걱정이 먼저 들었지만, 그 의사는 그저 기뻤나 보다. '다른 이유를 찾아보자'도 아니고, "괜찮다"니?


나는 너무 화가 난 상태에서 "그럼 나 아픈 건 왜 그런 거냐"라고 다시 한번 얘기를 했더니, 그럼 위장약 하나 처방해 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날 주치의를 바꿨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Marcelo Lea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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