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은 껌이라고 누가 그랬나.
미용실의 샴푸 의자에 누울 때, 수건으로 얼굴을 덮어주는 섬세한 배려가 좋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건 영 어색하다. 눈은 감고 있으면 그만이지만 그 작은 보호막 뒤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더 편안했다.
여기서는 어쩌나. 난처했다. 좁은 공간에 두 명의 방사선사와 웃옷을 훌렁 벗고 있는 나, 이렇게 셋이다. 오른쪽 유방에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준비를 한다. 필요한 기계와 인원만 고려한 공간은 다소 좁게 느껴졌다. 한 명은 코앞에서 설명하는 중이고 다른 한 명은 내 가슴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눈을 감았다 떴다가, 눈동자를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위에서 아래로 골고루 굴렸다. 타투를 그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오래 걸릴까. 시간이 진공 팩 안에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을 읽은 귀신같은 방사선사 한 분이 상당한 방사선량을 정확한 부위에 쪼여야 하므로 생각보다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만약 지워지면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친절한 설명인데 마치 협박처럼 들렸다. 가슴 위에는 논두렁을 그려놓은 것처럼 사인펜으로 죽죽 그어진 선을 보면 정교하게 그린 게 맞나 싶었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게 조심하리라 다짐했다.
병원을 나서자 8월의 태양답게 뜨거운 햇살이 내리꽂고 있었다. 아, 물속에 첨벙 빠지고 싶다. 방수 매직으로 그려주었길 바라며 핸드폰을 열어 수영장을 검색하다가 '다시 반복'이라는 말이 떠올라 얼른 닫았다. 방사선은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이비인후과에서 빨간 조명 앞에 코를 가만히 대던 기억이 나서 딱 그 정도겠지 하고 생각했다. 상의를 탈의한 채 두 팔을 위로 올리고 가만히 있는 것만이 다르점일 줄 알았다. 그만하면 정말 방사선 만세인데….
일주일이 지나자 방사선이 닿은 피부가 조금씩 벗겨졌다.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핑그르르 도는 것도 심해졌다. 축 늘어진 몸이 무거워서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느낌이 들었다. 해는 쨍쨍, 기분은 찜찜, 매미는 맴맴 하는 한여름 날의 방사선 치료는 죽을 맛이었다.
아들의 유치원 버스 놀이도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식탁 의자를 쪼르르 세워두고 날 불렀다.
"엄마. 이리 와 봐! 유치원 버스 놀이하자! 엄만 여기 의자에 앉아 있으면 돼."
세상에, 기특하기도 하지. 나가서 놀기 힘든데 의자에 앉아만 있으라니! 나는 반색하며 오우 케이! 하고 털썩 의자에 앉았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아이는 베개를 기어, 동그란 화분 받침을 운전대라고 하더니 신나게 운전하는 시늉을 했다. 내 앞에 뽀로로가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에디가 앉아 있었다. 내 역할은 '유치원 친구 1'이었다. 역할은 수월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을 하라고 한다. 등원, 하원할 때마다 선생님이 하시던 인사말까지 자세히 알려줬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세연이 왔어요. 예쁜 손.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내일 만나자, 세연아."
친정에서 머무는 중이라 이웃집에 아이의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이사를 온 지 1년이 되어 가는데도 다 기억하다니. 아이가 그곳을 그리워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다. 놀이터에 나가면 미끄럼틀부터 그네까지 끌고 다닐 께 뻔하다. 이 땡볕에 나가느니 집에서 학생도 하고, 선생님도 하고 그러는 게 백 번은 낫겠지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몇 발자국 옮겨 90도 인사를 하고, 아이를 인계하는 상냥한 선생님역할을 했다.
놀이를 거듭하자 아이의 기억이 점점 선명해졌다. 친구가 하원하는 데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던 일, 휴가 중인 친구 아빠가 엄마 대신 배웅 나온 일, 친구 동생이 갑자기 다쳐서 병원에 가는 바람에 다시 선생님들과 유치원으로 돌아간 일 등등 아이의 시나리오는 입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등장인물은 다양해지고, 배우는 나밖에 없었던지라 어느 순간 아이는 내게 누군가의 '엄마', '이모', '동생, '삼촌' 등의 역할까지 넘겨주었다. 의자에 앉으니 마치 버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멀미하듯 속도 울렁거렸다. 아, 이건 무슨 마술이지….
나와 아이를 매일 지켜보던 친정엄마는 어느 날, 쯧쯧 유별나다고 하셨다. 티브이나 보자며 리모컨을 들고 오시는데 나는 누런 얼굴에 가자미눈을 치켜뜨면서 괜찮다고 했다. 내가 아프기 전에도 엄마는 자주 '너무 그럴 필요 없다'라고 하시곤 했다. 아이에게 티브이를 보여주지 않는다거나, 늦게까지 책을 읽어주는 바람에 재우는 시간을 훌쩍 넘겼다고 하면 엄마는 별나다고 웃으셨다. "요즘 엄마들은 다 이래. 엄마가 우리 키우던 시대랑은 다르지"하고 나 역시 웃어넘겼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유, 별, 나, 다는 한 마디에 마음에 지진이 났다. 아마도 엄마의 말은 아이 키우는 데 힘 좀 빼도 된다는 뜻이셨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아이보다 내 몸을 더 생각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내가 아프니까 더더욱 아이가 느낄 허전함을 이렇게라도 채워주고 싶었다. 나는 '아픈 엄마'를 스스로 핸디캡으로 여겼다. 내가 생각한 모성은 이런 것쯤은 거뜬히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별나다'는 그 정곡을 대수롭지 않게 찔렀다.
아이가 자동차 놀이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작은 오빠는 어느 날, 뿡뿡이 핸들을 사 왔다. 귀여운 뿡뿡이는 우렁찬 경적을 냈다. 뽕짝 뽕짝 멜로디도 나왔다. 멜로디를 따라 불빛도 번쩍번쩍했다. 뿡뿡이 핸들을 품에 안은 아이의 아드레날린 수치는 더욱 치솟았고, 나의 불쾌지수는 천장을 뚫고 말았다.
차라리 병원에 가는 게 나았다. 하지만 상의를 탈의하는 순간이 오면 마음은 싹 바뀌었다. 도돌이표 같은 상황에 기운이 쏙 빠졌다. 그때 한쪽 병원 벽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적힌 캘리그래피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가방 속에서 수첩을 꺼내 남은 방사선 횟수만큼 동그라미를 그렸다. 하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 왜…. 그러나 병을 얻기에 적당한 때라는 게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픽 웃음이 나왔다. 자문자답을 하는 사이 방사선사가 나를 불렀다. 들어가야 한다. 들어갔다 나오면 돌계단 하나를 건너는 것이다.
시간은 흐른다. 계속 흐를 것이다. 상의 탈의한 이 순간에만 멈춰 있지 않는다. 그 사실이 꽤나 위안이 됐다.
* 제목의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담아왔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책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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