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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Jun 10. 2020

컬처 쇼크, 레게톤 클럽

눈을 어디다 둬야 해?

칼리에서 호스텔 생활을 보름 넘게 하고 있을 때였다. 밤이면 1층 내부 정원에서 몸이 널브러지는 소파나 해먹에 누워 맥주를 마시곤 했다. 이 날은 여기에 사람이 꽤 많이 모였었다. 아미고와 함께 맥주를 한 잔 하는데 그날 메데진으로 떠나려고 했다가 버스표 없어서 다시 돌아온 독일 친구도 합류했다. 이래저래 사람들이 모이니 클럽에 가자 어디 갈 거냐 같이 가자 말들이 오고 갔고 심심하던 차에 레게톤 클럽에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갈 준비 벌써 완료! 아미고는 전에 가 본 곳이라며 쉬겠단다. 그렇게 외국 여행자들과 함께 얼떨결에 나의 첫 레게톤 클럽을 따라가게 되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라 푸르가 라는 칼리의 레게톤 클럽은 토요일이 핫하다고 소문나 있었다. (게이 클럽이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예전에 여자 초이와 함께 여길 가려다가 입구에서 여권 검사를 하는 바람에 못 갔는데 이번엔 만반의 준비를 다 해서 출발!

입장하는 줄부터 사람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바운스 바운스 큰 음악소리에 심장까지 쿵쾅거리는 느낌! 클럽 입구에서 얼마 안 들어갔는데도 다들 부비부비 춤추고 이곳이 게이들이 많이 온다는 소문은 사실인지 남자들끼리 딥키스를 나누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촘촘하게 서 있어서 우선은 입출구 쪽에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 이 망측한 춤은 무엇인가??
컬. 쳐. 쇼. 크.


내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는 이 춤은 여자가 엉덩이를 남자 아랫도리 쪽에 갖다 대고 엉덩이 털기를 시전 하며 상체를 아래로 숙이고 남자는 거기에 부응하여 성행위하듯 마구 흔들어대는데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나도 이 문화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더는 못 보겠어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입구의 바에서 맥주 한 병을 사 가지고 조금씩 들어갔다. 사람도 많고 잘 보이지도 않고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부턴가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나도 곧 혼자가 되었다. 깊숙이 들어가긴 싫어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맥주를 들고 서있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무리들과 대화를 할 수 시작했다. 콜롬비아 청년들이었는데 풋풋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보였더라는. 홍일점 콜롬비아 처자도 한 명 있었고 그렇게 우린 같이 어깨춤 덩실거리며 공연도 보고 사진도 찍고 살루드(건배)를 외치며 함께 술 병도 부딪혔다.

오늘의 특별 공연이었는지 음악이 바뀌며 시작된 2층에서의 공연도 볼만했다. 건장한 청년들이 굉장히 섹시한 춤을 보여줬는데 옷을 걸치다 만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물구나무도 서고 근육질의 남자들이 상의를 탈의한 채, 꽉 끼는 바지를 입고 이상한 춤을 추기도 했다. 아주 가끔 10곡 중 한 번 살사 음악이 나오기도 했는데 다들 춤추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냥 넘어가기 아쉬워 멀뚱하게 서 있는 콜롬비아 남자에게 같이 살사 추자고 먼저 춤을 신청했다. 떨떠름한 리액션을 보였던 그는 살사를 출 줄 아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리 즐기지는 않는 눈치였다. (추가 싫은데 억지로 추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보통은 여자랑 춤출 때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알고 보니 다른 남성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아까 처음 말을 걸었을 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더니 나와의 춤이 끝나자마자 바로 어떤 남자에게 가서는 딥키스를 하더라.


내가 너의 시간을 방해했군!


콜롬비아는 동성애, 양성애자들이 많고 본인 스스로 자기가 동성애자다 양성애자다 거리낌 없이 밝힌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한국처럼 눈치 볼 이유도 없다. 게이 클럽에 게이들이 넘쳐나고 그들은 그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서로를 사랑한다. 아직 이런 문화에 적응 덜 된 나에겐 레게톤 클럽의 섹시함을 넘어선 방탕해 보이는 춤과 더불어 클럽 안의 광경은 약간의 컬처쇼크였다.


클럽에 살사 선생들을 데리고 가면 좋겠지만 살사 선생들은 살사 클럽보다 레게톤 클럽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매일 풀만 먹는 사람에게 고기반찬이 중요하듯, 매일 살사를 추니 일이 끝나고도 살사를 또 추고 싶진 않을게다. 나 같은 여행자들은 살사 학원 선생들에게 살사 클럽 같이 가자고 하지만 그들은 레게톤 클럽을 가고 싶어 한다. 여럿이 같이 가면 같이 둘러 서서 자기들끼리도 부비부비 하며 춤추는데 콜롬비아에서 그 스킨십의 경계를 어느 정도 허물었던 것 같다. 이성인 친구끼리 무릎에 앉기도 하고 일반적인 인사가 허그나 볼뽀뽀(비쥬)에서 시작하니까. 친구끼리 팔짱 끼는 것은 예삿일이고 허리를 감싸는 것도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된다. 흠칫 흠칫 놀라 했던 초반 칼리에서의 나날들은 나의 애송 이적 시절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처음엔 컬처쇼크였지만 나에게도 레게톤 클럽에서 웨이브를 시전 하며 비비적대는 날이 머지않아 온다. 당시만 해도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웨이브가 되니 혼자 춤을 춰도 태가 나더라. 처음 갔던 칼리에서의 18일 동안은 웨이브를 제대로 못 했지만! 몇 달 후, 신의 손 페르난다를 만나고 웨이브가 가능해졌으니 어느 클럽에 가도 내 마음대로 춤출 수 있어 자신감이 살아 숨 쉬었다. 처음이라 컬처쇼크였던 레게톤 클럽도 가면 갈수록 알아서 잘 즐길 수 있었다. 여전히 난 레게톤 클럽보다는 살사 클럽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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