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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Jun 09. 2020

세상 끈적이는 춤, 바차타

웨이브는 너무 어려워

살사 클럽을 다니다 보면 살사 외의 음악도 나오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바차타와 메렝게다. 메렝게는 살사를 배우기 시작했다면 한 시간도 배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금방 배우는 춤이지만 바차타는 여자의 움직임이 어찌나 꿀렁꿀렁하던지 배울 게 많아 보였다.


남녀의 교감, 유연한 움직임, 섹시한 느낌의 바차타를 내가 잘 출 수 있을까?


스텝은 단순하다는데 내 몸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뻣뻣함을 갖고 있어서 걱정이 앞섰다. 살사 10시간 수업이 어느 정도 끝날 무렵, 바차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밥 블레스 유’에서 이영자가 놀랄 정도로 그렇게 세상 야하고 끈적이는 춤인 바차타를 말이다.


학원에는 바차타 전문 선생이 따로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스티븐, 몸 선이 너무 아름다워 그가 발레 연습을 할 때 나도 모르게 힐끔 쳐다보곤 했었다. 그러나 쳐다보면 무엇하리? 그는 동성애자라 나는 거들떠도 안 보는 걸! (콜롬비아는 동성애자가 많고 사회적으로도 뭐라 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자기 수업 있을 때만 와서 수업하고 휭 가버려서 말 섞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어쨌든 ‘바차타는 스티븐이다’라고 다들 말하긴 했지만 너무 붙어 추는 춤이라 좀 부담이 덜한 애기 선생 제이슨(학원의 막내)이랑 같이 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와중에 바차타를 배우는 건 좀 부끄러워서(워낙에 뻣뻣해서 몸짓이 웃길 것이라 생각했다) 학원이 아닌 호스텔에서 수업을 하기로 했다. 기본 스텝부터 이것저것 배우는데 상체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내 몸이 따라가 주질 않는다. 몸에 힘을 빼고 웨이브부터 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이 뻣뻣한 몸은 웨이브의 웨도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원래도 유연성 제로인 데다가 허리 디스크가 터진 후(2014년 10월에 터짐) 자연치유가 되었다지만, 그 후로 고목나무를 덧댄듯한 뻣뻣한 느낌의 허리는 웨이브 따위 개나 줘라고 외치는 듯이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텝이야 곧잘 따라 했지만 역시 웨이브가 문제. 남자가 여자의 옆구리를 잡거나 허리를 등 쪽에서 팔로 굴리면 여자가 그 손짓에 맞춰 웨이브를 하거나 부드러운 움직임을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다. 제이슨은 몇 번 웨이브 들어가는 동작을 시도하다가 도미니카 바차타를 하자며 다른 스텝을 알려준다.


원래 바차타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시작된 춤인데 그 섹시 버전이 바차타 센슈얼이다. 콜롬비아는 바차타 센슈얼이 유행인데 난 그거 배우고 싶다고!! 결국 웨이브부터 연습하라는 말에 벽 잡고 구렁이 담 넘어가는 연습을 하기 시작.

웨이브 안 되던 시절, 혼자 벽잡고 웨이브 연습 중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니 벽 잡고 웨이브 하는 건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그러나 벽은 잘 되는데 사람이랑은 왜 잘 안되지?? 서로 다리와 다리를 사이에 끼고 하체는 고정된 상태로 상체만 좌우 라운딩 앞뒤 웨이브 등이 되어야 하는데 제이슨이 돌리다가 포기하고야 만다. 저 무릎과 무릎, 다리와 다리를 사이에 끼고 하는 동작은 처음엔 남사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하다 보면 아무렇지도 않다. 단, 내 상체가 내 마음대로 안 움직여서 슬플 뿐.


본인이 바차타를 출 수 있는 것과 못 추는 사람을 잘 추게 만드는 것은 천지차이인 것 같다. 칼리에서의 첫 18일 동안 살사와 바차타를 배웠지만 바차타는 배우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처음부터 스티븐에게 배웠으면 어땠을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이슨과의 수업 자체도 재미있어서 후회하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이런저런 웨이브가 다 된다. 그게 중요하지!


바차타 수업이 재미있었던 것은 스티븐과였고 웨이브를 완성시켜준 선생은 몇 개월 뒤에 만나게 될 나의 마지막 바차타 선생 페르난다(그녀의 손은 신의 손 수준)였다. 돌이켜봤을 때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여자 선생에게 바차타를 처음 배우면서 웨이브나 동작을 익힌 후, 남자 선생과 함께 춤추며 연습하듯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의 바차타는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이후로 두 명의 선생을 거쳐 완성되었다. 실전 연습을 하기에는 바차타 잘 추는 남자를 클럽에서 만나기 어려워 몇 번 출 기회는 없었지만, 이제 웨이브가 잘 되니까 그걸로 만족한다. 확실히 바차타는 나처럼 마른 여자보다는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가 춤의 태가 난다. 사실 살사도 마찬가지지만.

칼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 수업 후 제이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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