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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Jun 15. 2020

40일 만에 다시 온 콜롬비아

몇 달 논다고 인생 어떻게 되지 않는다

결국 난 40일 만에 다시 콜롬비아로 향했다. 염치없이 5개월이나 외국에서 생활하다가 한국 들어와서 고작 3주, 반년 전부터 계획한 태국 여행을 3주 다녀와서 몇 밤 자고 바로 콜롬비아로 떠났다. 부모님 뵐 면목은 없었지만 이미 결정한 사안이고 가기로 했으니 가는 거다. 프리랜서로 하던 일도 마지막 달이어서 이미 백수 예약에 이 나이에 몇 달 논다고 인생 어떻게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은 무겁지 않았다. 다만, 김장김치에 압력밥솥에 갖가지 한식들을 이민가방에 가득 챙겨가느라 두 손이 무거웠을 뿐. 이왕 몇 달 살아보려고 떠나는 거 이것저것 다 준비해서 가고 싶었다. 이것저것 겨우 무게를 맞춰 캐리어 두 개 가득 콜롬비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콜롬비아 가는 길


인천에서 댈러스를 거쳐 콜롬비아 보고타에 도착하기까지 21시간, 바로 버스터미널로 이동해 2시간 후 야간 버스를 타고 칼리까지 11시간의 육로 이동, 도합 34시간 만에 칼리에 도착했다. 보고타에서 하루 쉬다 갈 수도 있긴 했지만 짐이 어마어마해서 왔다 갔다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바로 칼리로 향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짐들 & 보고타 칼리 구간 버스

첫 칼리에서의 18일은 호스텔 도미토리에서 지냈지만 이번엔 에어비앤비 아파트 독채를 구했다. 그리고 짐이 많아서 엘리베이터 있는 숙소를 찾았다. 숙박비만 따지자면 호스텔이 훨씬 저렴했는데 아파트 독채가 마음대로 내 공간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 소지품 관리도 쉽고 요리하기도 좋아 선택했다. 게다가 김치를 잔뜩 가져와 나만의 냉장고가 필요하기도 했다. 내심 혼자 살기도 해보고 싶었고.


거실이 참 마음에 들었던 칼리 첫 집


콜롬비아 칼리의 내 집, 마음에 쏙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내 생에 처음으로 집에서 나와 혼자 살림하며 살게 된 첫 집이라고 보면 된다. 콜롬비아로 출발하기 전 늦게 예약하는 바람에 한 달 통으로 예약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위치와 시설, 가격 등 맘에 들었다.


콜롬비아 칼리는 12월 말(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에 살사 축제(라 페리아 카니발)를 크게 하는데 그것 때문에 그 기간은 많은 숙소가 이미 예약이 되어있었다. 카니발 기간만 다른 곳 예약을 잡아두고 여긴 그 전까지만 있기로 해서 이 집에서는 총 3주 정도는 머물 예정이다. 미라플로레스라는 동네인데 나름 안전한 편이고 살사 학원까지 걸어갈만한 거리에 버스 정류장도 가까웠다. 짐을 풀고 태국에서 산 크리스마스 조명 볼도 장식했더니 블링블링한 게 참 예쁘다. 독립하면 이런 기분일까? 마치 내 집 같다.


칼리에 도착한 날은 한국에서부터 34시간의 이동 때문에 온몸이 피곤에 절어있었다. 그래서 숙소 오자마자 씻고 널브러진 채 잠을 잤다. 일어나니 벌써 다음날 오후... 하루를 그냥 날렸지만 피로 해소가 우선이었다. 허기만 채우고 또 취침. 다음날은 바빴다. 친구 생일 파티가 있어 마트에 다녀와 김밥 재료를 미리 준비하고 샹그리아 만든다고 과일 썰고 과인 넣고 쉐킷 쉐킷 하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발 없이 싼 김밥, 칼이 잘 안 들어 김밥 모양이 시원찮다


아미고네 집에 가서 준비해 간 재료로 김밥도 말고 떡볶이도 만들고 이것저것 먹으며 친구 다리아나의 생일 파티를 겸한 한국 음식 체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한국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100번 넘게 봤다는 다리아나는 한국음식이며 한국문화며 안 좋아하는 게 없었다. 놀랍게도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벌써 애가 셋이지만. 중남미에서는 결혼하고 재혼하고 그런 게 비일비재하고 굳이 결혼 안 하고도 동거하며 애 낳고도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 만나고 그런 경우가 많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눈에 띄게 예쁘면 남자 친구 있냐는 질문보다 이 질문을 해야한다.

혹시 아들이나 딸 있니?


남자 친구는 없지만 자식이 있는 미인이 참 많으니 말이다.


내가 이긴 판이라 엄지 척


떡볶이와 김밥을 먹으며 주린 배를 채운 후, 우린 도미노 게임을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도미노를 배운 것이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도미노? 쓰러뜨리는 거?


아니다. 어디서부터 유래된 게임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미노 게임이란 것이 있다. 가장 도미노 게임에 미친 나라가 쿠바일 게다. 길에서 마작 두는 사람들처럼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자기 패를 보며 중앙에 뭔가 계속 패를 내는 사람들. 쿠바 도미노는 숫자가 9까지 있는데 그 외의 나라에서는 6까지 있다. 내가 처음 배운 도미노는 6까지 있는 보통 도미노. 네 명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미노 게임을 수 십 판은 했던 것 같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손가락 게임 제로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늦게 도착한다고 연락 온 살사 학원 친구들(선생들) 기다리느라 노래 부르고 촛불 켜는 건 좀 늦게 시작했다. 칼리 도착해서 생일 선물을 준비할 겨를도 없어 급하게 준비한 나의 샹그리아! 달달하고 맛있어 금방 동이 나버렸다. 다 같이 사진 찍고 케이크랑 달달한 음식들 먹으며 술 한 잔 했다. 너무 달아서 몇 번 입에 들어가질 않던 음식을 잘 먹더라. 단 것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은(다들 20대 초중반이라 어찌나 풋풋하던지) 이 음식들이 그리 달지 않나 보다. 너무 달아서 손도 못 대는 나와는 사뭇 달랐다.


이날은 태국에서 배워온 타이마사지를 한 번 시전 해주려고 했었다. 다들 사양하는데 그나마 제이슨만 해달라고 해서 시도해봤다. 그러나 역시 마사지는 하는 것보다 받는 게 더 좋은 것 같다는. 다 외우질 못해서 책을 동작 바꿀 때마다 계속 보느라 손이며 발이며 눈이 모두 바빴다.


늦은 밤까지 계속된 오랜만의 회포, 40일 동안 칼리는 별로 변한 것은 없었다. 살사 학원에서 일했던 다리아나는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들어온 페르난다(훗날 내 웨이브를 갱생시켜 줄 신의 손)를 이 날 여기서 처음 만났다.


칼리에서 몇 개월을 지낼지 계획하고 온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있을지 당시만 해도 몰랐다. 우선 페리아 축제 기간 끝날 때까지 있다가 1월에 친한 언니가 쿠바로 온다기에 같이 쿠바에서 만나기로 한 것 밖에 없다. 난 무조건 항공권 가장 싼 날에 들어가야 했기에 1월 7일에 쿠바로 갔다가 31일에 다시 칼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제 알차게 칼리에서 한 달의 시간을 보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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