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유 Jun 30. 2020

웨이브 갱생의 길, 이제 시작이다

그렇게 안 되던 웨이브가 된다

페르난다를 처음 본 건 이번에 콜롬비아 칼리에 다시 오면서부터다. 40일 만에 살사 학원에 갔더니 종전에 살사와 바차타를 가르치던 다리아나가 그만두고 새로운 선생인 페르난다가 와있었다. 그녀는 바차타 전문으로 (물론 살사도 가르침) 여성스러운 다리아나와는 다른 보이시한 느낌이었다. 다리아나의 생일파티에서 서로 소개 정도만 하고 헤어졌었는데 살사 학원에서 며칠 지켜본 후 바차타 레슨을 받기로 마음을 정했다. 10시간 패키지를 등록하면서 5시간은 페르난다, 5시간은 스티븐(살사 학원에서 바차타를 제일 잘 추는 선생)과 하기로!


웨이브가 안 되는 내가 가장 해야 할 것은 역시나 웨이브, 몸이 워낙에 뻣뻣한 데다 아무리 벽 잡고 연습해도 벽 잡을 때나 조금 되지 그 외엔 전혀 나아지질 않아 의기소침해하고 있을 때였다. 여자 선생한테 배우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첫 시간부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몸을 터치하는 것부터 거부감이 없었다. 예를 들면, 페르난다 무릎 위에 앉아 그녀의 팔로 내 가슴 아래부터 배까지 위아래로 문지르며 웨이브 할 때의 움직임을 알려준다던가, 몸통 좌우를 꽉 잡고 좌우 앞뒤로 몸통을 움직이며 웨이브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던가, 내 몸이 안 따라오면 온갖 자세를 바꿔가며 내 몸이 알아듣게 만들어줬다. 전신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데도 너무나도 다른 느낌적인 느낌. 좌절하고 있으면 바로 뒤에 와서 내 몸을 잡고 움직이는 방법을 알려줬다. 여자 끼리니 여기저기 만져도 부담감이 없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매우 유연한 페르난다의 웨이브

그렇게 몇 시간을 배우던 어느 날, 내 몸이 페르난다까지는 아니어도 그 느낌이 살짝 나올 정도의 웨이브를 따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나! 내가 웨이브가 되네?

페르난다!
나 웨이브가 되는 거 같아!


악!!! 소리 지르며 어린애처럼 팔짝 뛰며 좋아하는 것을 보더니 Si! (그래) Si! (그래)로 화답하며 껄껄대고 웃던 페르난다는 나에게 할 수 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웨이브 시전을 볼 때마다 매번 “무이 비엔(너무 잘한다). 무이 린다(너무 예쁘다)”를 연발했었는데 그때마다 너무 재밌어하던 페르난다. 비슷하게 한다 해도 깍 마른 나와 볼륨감 있는 몸매의 페르난다의 웨이브 느낌이 많이 다른 것은 사실이었던지라 ‘페르난다처럼 웨이브 해야지’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두기로 했다. 웨이브 이거 한 번 성공하니 별거 아니네 하며 그 외의 동작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한 번 웨이브가 되기 시작하니 시도 때도 없이 몸을 꿀렁꿀렁 움직였다. 가만히 있을 때도 계속 좌우로 몸을 뒤흔들고 어깨와 몸 움직이는 것도 수시로 하고, 물론 내 마음대로 내 몸이 다 따라주는 것은 아닌지라 시계방향으로는 잘 되어도 반시계 방향으로는 잘 안되곤 했다. 반대쪽 방향이 잘 안되어도 되는 쪽으로만 자꾸 하다 보니 몸의 균형 맞추기에는 그리 좋진 않은 것 같았다. 원래도 자세가 올곧지 못하여 비 대칭한 편인데 말이지. 그래도 안되던 웨이브가 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춤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그리고는 레게톤 음악에 맞춰 웨이브부터 털기 동작까지도 쭉 적당 적당히 따라 할 수 있었던 나. 스스로 만족하여 내 몸에 손을 쫙 펴고 와칸다 포에버 같은 동작으로 셀프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모두들 나의 셀프 칭찬 포즈를 보며 박장대소하더라는.


페르난다와의 바차나 레슨 5시간이 끝날 무렵 몇 시간 더 듣기로 하고 그게 끝나면 스티븐과의 바차타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 번은 샌들 끈이 끊어져서 신발 수선집까지 데려다준 페르난다가 고마워 식사 초대를 했는데 겸사겸사 스티븐도 같이 불렀다. 이제 앞으로 스티븐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친해질 겸! 많이 준비하지 않은 소박한 저녁상을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내 기분마저 좋게 해 준 페르난다와 스티븐. 참치마요 김밥과 삼겹살은 역시 통할 줄 알았어! 특히 삼겹살 어떻게 만들었냐고 묻는 페르난다에게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던 나.


내 바차타 선생, 페르난다와 스티븐
돼지고기 삼겹살이랑
마늘 양파 넣고 프라이팬에 구워.
소금 살짝 뿌리던지 찍어먹던지.


그렇게 12월 중순까지는 매일 살사 학원에 출근하며 이미 배웠던 살사를 더 다지고, 바차타에 필요한 웨이브 익혔다. 저녁엔 칼리에 머무는 한국인 여행자와 급만남을 갖고 같이 클럽에 가서 춤추고 노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이제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가 되어 칼리가 낯선 여행자에게 칼리를 소개해주는 역할까지 했던 나. 이제 벌써 12월 중순을 넘어 크리스마스가 머지않았다. 칼리에서 가장 핫하다는 12월 말의 살사축제가 코 앞까지 다가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만 있다면 어디서든 출 수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