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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Jun 02. 2020

살사란 나에게 소스일 뿐

인생의 낮잠, 나에게 꿈처럼 나타난 살사

내 나이 어느덧 30대 중반의 산등성이를 터벅터벅 넘어가고 있었다. 세계 여행으로 1년 넘게 여행 다닌 사람만큼, 아니 그 이상 배낭여행은 다닐 만큼 다녀서 뭘 봐도 시큰둥해졌고 “거기보다 저기가 더 좋아”, “거기? 그냥 그래” “거긴 볼 게 없어” 이렇게 나도 모르게 꼰대 같은 말만 늘어놓고 있었던 때였다.


그렇게 다닌 여행지 중 2016년에 가려고 했다가 비행기 티켓을 버리는 바람에 못 갔던 콜롬비아가 가장 눈에 밟혔다. 세상 어디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 많은 콜롬비아, 오롯이 한 달 정도의 기간으로 콜롬비아만 여행하려고 떠난 그 여행의 중반쯤 만난 한 여행자는 콜롬비아 마지막 여행지 “깔리”에 대해 부푼 기대감을 안고 있었다.


쿠바에서 살사 배웠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살사의 고장으로 유명한 깔리,
그래서 너무 기대되어요.

살사? 소스? 라틴 춤 살사는 나에게 소스와 같은 존재. 간혹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라틴 춤에 대해 나와도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그 오두방정 떠는듯한 춤사위가 그리 내 스타일도 아니었기에, 신기한 청년이로세 하며 운 좋으면 깔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작별인사를 하고 그와 마지막 만찬,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을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안 되어 그에게서 딱한 소식을 접했다.

여기 도시가 좀 이상해요
노숙자도 너무 많고
도시 자체가 너무 어둡고
저랑 안 맞는 같아요.

어떻게든 내가 갈 때까지 버텨보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그렇게 일주일 정도 흘렀다. 그는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침울해하던 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상태였다.

여기 너무 좋아요!
매일 학원에서 레슨 받고
클럽 가서 춤추고 술 마시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이 친구 춤바람이 단단히 났네...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섭다는 그 춤바람 아니던가? 그래! 내가 곧 가니까 기다려라 하며 우린 며칠 후 콜롬비아 깔리에서 다시 만났다.


깔리에 도착한 날, 정말 도시가 주는 음습함에 도시의 경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회색빛 암울함을 느낄 수 있었고 해진 후의 도시는 더욱 삭막했다. 거리에 사람조차 몇 명 보이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밤늦게 만난 내 아미고(우린 스페인어로 친구라는 뜻의 아미고 아미가로 호칭했다)는 몇 곳의 살사 클럽을 살사 선생들과 함께 다니며 같이 춤추는 살사 투어를 하고 온 상태였고 난 그를 호스텔에서 심심한 상태로 기다렸다. 가볍게 회포를 풀고 다음 날, 이렇게 할 일이 없나 싶을 정도의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아미고의 강력 추천으로 저녁 무렵 호스텔에서 열리는 무료 살사 그룹 레슨에 못 이긴 척 참여했다.

나의 첫 살사레슨
어라? 이거 재밌네?

엉거주춤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과 손 붙잡고 어설프게 스텝을 밟으며 시작한 내 첫 살사, 예상외로 줄곧 잘 따라 하는 내 몸놀림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먼저 배웠다고 살사를 처음 배우는 나를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는 아미고를 보며 부끄럽기도 했지만 1시간의 무료 레슨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때, 이미 나에게 살사란 더 이상 소스가 아니라는 것을 내 몸은 자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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