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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Jun 03. 2020

나는야 살사 새싹

내 첫 살사 선생 빅터

나의 살사 선생 빅터(빅토르라고 쓰고 빅터라 읽는다)는 호스텔과 연계된 살사 학원 원장이자 이 학원에서 가장 오래된 경력을 자랑하는 콜롬비아 사람이다. 뭔가 능글맞은 듯한 그의 언행은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아직 라틴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나에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여담이지만 경력뿐만 아니라 액면가도 상당해서 더 부담이 가중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같은 한국인이어도 빅터가 너무 잘생겼다고 칭찬을 엄청 했던 동생도 있었으니 사람에 따라 취향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여행하면서 상대방의 나이를 묻지 않는 편인데 상대방이 먼저 물어보거나 피치 못 할 순간이 와야 내 나이를 말한다. 아시아 사람이야 원래 어려 보이기 때문에 나 역시 다들 내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편이었다. 빅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빅터가 내 나이를 묻길래 먼저 빅터의 나이부터 말하라고 은근슬쩍 대답을 떠넘겼다.

나 서른둘이야


왓?? 너무 놀라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자기 콜롬비아 ID까지 보여주며 자기가 나이 들어 보이는 거 안다며... (너무 과한 반응에 좀 미안했다) 정말이네? 내가 아는 사람 중 액면가로는 최고봉이 아닐지. 본인의 노안에 대해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빅터였지만 나름 위안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괜찮아 빅터
십 년 후에도 같은 모습일 거야


사실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다 한 두 살 차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를 벗어나 너무 놀랐다. 그리고는 내 나이를 묻길래 “비밀! 너 보다는 많아” 하고 넘어갔다. 내 나이 알면 기함할 것을 알기에...


빅터와의 첫 살사 수업은 호스텔 무료 그룹 살사 레슨 때 배웠던 스텝부터 다시 시작했다.

우노, 도스, 뜨레스 (1, 2, 3)
씽코, 쎄이스, 씨에떼 (5, 6, 7)


한 시간 동안의 첫 살사 수업 중 귀에 못이 박힐 정도 들었던 말이 바로 스페인어로 1, 2, 3(우노, 도스, 뜨레스)와 5, 6, 7(씽코, 쎄이스, 씨에떼)! 다섯 번째 스텝만 조금 헷갈려서 초집중한 상태에서 발을 딛어야 했고 나머지는 쉽게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무리 없이 줄곧 잘 따라 해서 콜롬비아 살사의 기본 스텝 5가지를 소화해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해낼 때마다 빅터는 최고의 칭찬을 해주었고 난 칭찬받고 자란 어린이처럼 자신감이 무럭무럭 자랐다. 첫걸음마 살사를 배우면서도 얼른 잘 추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살사학원 스케줄표

빅터는 15년 넘게 춤을 췄다고 했다. 당시에는 리딩(살사를 추면서 춤 패턴을 이끄는 것)이니 팔로잉(살사를 추면서 춤 패턴을 따라가는 것)이니 그런 것을 잘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확실히 다른 선생과는 다른 편안한 리딩 실력을 보여줬다. 자기가 가장 살사를 잘 춘다고 느낄 때가 자기 선생이랑 살사를 출 때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살사 수업 후에도 학원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 춤추는 것을 유심히 봤는데 잘 추는 사람은 선생과 합이 너무 잘 맞아 수업이 아니라 그냥 같이 재밌게 춤추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살사 수업 후의 학원, 붉은 상의를 입은 빅터 젊었을 때 모습

어느 세월에 저만큼 살사를 출 수 있을까? 한숨이 나오던 차에 오늘 살사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미고와 다른 살사 선생 몇 명이 같이 그 살사 축제에 간다고 하여 나도 합류하기로 했다. 살사 처음 배우자마자 살사 페스티벌이라니... 이렇게 아다리가 딱딱 맞을 수 있는 것인가?? 엄청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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