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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Aug 04. 2020

배추야 반갑다

겉절이는 수육, 닭볶음탕엔 소주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살아


누가 이 노래를 만든 것인지, 내가 할 말이 그 말이다. 배낭여행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 예전엔 현지에서 파는 모든 음식을 잘 먹고 다녔다. 그리고 가급적 현지식으로만 먹으려고 했다. 한식 생각은 전혀 안 했고 여행 전에 미리 챙겨가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태국 여행 중 구정 기념으로 떡국을 먹으러 간 한식당에서 떡국을 팔지 않아 김치찌개를 먹은 적이 있었다. 식당에 가기 전부터 떡국 생각에 설렘까지 안고 갔건만, 메뉴가 김치찌개로 변경되면서 약간의 실망감이 밀려왔다. 근데 왜 이렇게 맛있는 거지? 그게 해외여행 중 방문한 첫 한식당이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한식이 당기는 것은 왜일까? 현지식만 고집하던 내가 이제 한식을 찾아다닌다. 아니면 한식 비슷한 느낌의 음식을 찾아다닌다. 그나마 일식이나 중식이 입에 맞으니. 그렇게 떠돌아다니다 콜롬비아 칼리에 몇 달 체류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만든 엄마표 김장김치를 들고 나왔다. 쿠바 가기 전까지 김장김치를 모두 해치우고 이제 난 김치를 담가야 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정도만 되어도 배추나 무를 구할 곳이 있다 하는데 칼리는 찾기 어렵다. 당시만 해도 난 레디쉬로 깍두기를 담그거나 양배추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키미네 호스텔에서 한중 합작 한 상차림을 먹고 며칠 후, 키미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언니!! 배추를 찾았어요!!


콜롬비아에서 만난 첫 배추


왓??!! 배추??!! 오. 마이. 갓.

도대체 어디서 찾았나 물어보니 센트로 커머셜 지하 마트란다. 거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보러 갔을 때 빼고는 한 번도 안 갔는데!!


“두 포기 사! 아니 세 포기?”


배추 하면 겉절이나 김치가 생각나고 그럼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바로 수육이다. 해외에 살면서 배추를 구한 날은 돼지고기도 함께 샀었다. 겉절이에는 수육이 제격이니까.


“우리 겉절이에 수육 해 먹자!”


오늘 저녁? 내일 점심? 저녁으로 먹기엔 시간이 빠듯하여 내일 만나기로 했다.


배추 그까짓 거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그것도 배추나 무 구하기 쉽지 않은 곳에 살다 보면 식재료 구한 날은 뛸 듯이 기쁜 날이기도 하다. 겉절이에 신선한 배추김치까지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침이 꼴깍!


다음 날, 낮에 키미와 수동이가 우리 집으로 배추를 들고 왔고 난 배추부터 절이고 수육을 삶고 부산스레 움직였다.


겉절이와 수육, 상추와 된장찌개는 옵션


행. 복. 해.


우린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최애 음식이 겉절이에 수육, 보쌈이라 말했다.


언니 전 닭볶음탕이 제일 좋아요!


자긴 자다가도 닭볶음탕 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난단다. 하하하!


“그럼 닭볶음탕 해 먹을까? 오케이! 내일은 닭볶음탕 먹자!”


닭볶음탕이 뭐 그리 어렵다고. 내일은 닭볶음탕이다 소리에 기뻐하는 키미. 근데 수동이는 닭볶음탕 매워서 먹을 수 있을까?



다음 날, 살사 그룹레슨을 다녀와서 저녁 준비하느라 바빴다. 닭볶음탕에 혹시나 매운 음식 못 먹을까 봐 수동이를 위한 호박전까지! 나 이거 참.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전집 가는 것도 너무 싫어하는데 외국 나와서는 호박전을 수시로 부치는 나.


매번 뭐 필요한 거 없냐고 우리 집 오는 길에 뭐라도 사 오려고 하는 키미와 수동이는 시간 맞춰 우리 집에 도착했다.


닭볶음탕엔 소주지!

애지중지 아껴둔 소주도 개봉!


오늘의 저녁 메뉴, 닭볶음탕과 호박전


키미는 자긴 먹을 복이 많다며 매번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이 요리를 많이 해줬단다. 특히 한국인들 만나면 다 요리 잘하는 분들 이어서 저번에도 좋은 언니들 만나 닭볶음탕만 보면 환장한다고 말했더니 해주시더라고. 한식당 안 찾아가도 이렇게 한식을 중간중간 자주 챙겨 먹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에게 딸 이렇게 잘 먹고 다닌다고 사진 찍어 보낼 거라며 우리 집만 오면 음식 사진 찍는 키미.


잘 먹으니 또 해주고 싶지! 역시 난 어쩔 수 없다.

내 요리를 누가 맛있게 먹어주기만 해도 기분 좋은 걸 어떡하겠나.


참이슬과 닭볶음탕은 환상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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