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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Aug 08. 2020

호텔 가기 싫어요

모든 관광객은 호텔로 이송됩니다


짧은 기간 동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3월 24일까지 모든 관광객은 쿠바를 떠나야 하고 그 후에 남아있는 관광객은 호텔로 이송시킨다고 했다.


어라? 이건 아닌데? 호텔로 끌려가면 어떡하지?


무서웠다. 호텔로 가면 그대로 호텔에 매일 25쿡(약 3만 원)을 지불해야 한단다. 그것도 출국할 때까지. 관광객을 호텔로 이송시킨다는 소식을 듣고 난 언제 끌려가려나 걱정하며 벌벌 떨고 있었다.


대부분의 장기 체류자들은 쿠바에 남아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나 역시 갑작스럽게 짐 싸서 출국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늘이 너 생일 한 달 전이잖아?
생일 선물 미리 줄게


A는 호텔에 끌려갈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에게 한 달 일찍 생일 선물을 주겠단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하게 해서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게 해 주려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도 말 안 듣는 A, 결국 한 달 일찍 생일 선물을 받았다. 내 마음 진정시키겠다고 미리 사 둔 생일 선물을 준 A가 너무 고마웠지만 벌벌 떨던 것을 멈춘 것도 잠깐이었다.


24일 이후 외국으로 나가는 항공편이 있긴 했지만 기껏해야 미국 마이애미행. 며칠 정도는 잘 운항되다가 그 후로는 점점 취소 횟수가 잦아졌다. 어차피 여기서 사람을 태우고 간다 한들 들어오는 비행기는 영주권자나 쿠바 국민이 아니고서는 탈 수 없으니 수지타산이 안 맞아 항공사도 항공 운항을 지속할 수 없었을게다. 그리고 일주일 후 공항이 폐쇄되었다.


혹시 호텔로 끌려갈까 봐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도 놀라 쥐 죽은 듯 숨죽이고 있었다. 낮에는 집에 아무도 안 사는 것처럼 모든 창을 닫고 불을 끄고 있기도 했다.


쿠바에 살지는 않지만 수년째 매년 석 달씩 장기 체류를 하러 온 S도 코로나로 인해 출국일까지 아바나에 갇혀버린 상황.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매일 연락하며 호텔로 끌려가면 서로 먼저 연락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우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카톡에도 서로 놀라고 있던 차였다. (호텔로 끌려갔다는 카톡일까 봐)


그렇게 쿠바의 관광비자로 체류 중인 나와 비슷한 상황의 주변 지인들과 연락하며 무슨 일 생기면 서로 알려주기로 하며 지냈다.


쿠바 사람인 A는 외출하는데 지장이 없어 A에게 부탁하여 인편으로 베다도 사는 J오빠와 서로 외장하드에 담긴 영화와 드라마를 교환했다. 집에만 있으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요리하며 삼식이처럼 하루 세끼 잘 챙겨 먹으며 3월 말을 보냈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3월 말, 집 앞 거리


그리고 4월 초 어느 날, 아침 카톡이 왔다.

별일 없는지 묻는 J오빠.


“별일 없어?”

“네~ 무슨 일 있으세요?”


그리고 울린 전화 벨소리.

좀 전에 이민국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셨다.

오후에 호텔로 이송되니 준비하라고.


“네??!!!!! 이렇게 갑자기요??”


그래도 연륜이 있으셔서 그러시었는지 아님 남자라서 그러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쿨하게


“가라고 하니 가야지 어쩌겠어.”


그렇게 J오빠는 이것저것 먹을거리 챙겨 짐을 싸 호텔로 이송되셨다. 놀란 마음에 S에게 연락해 이 사실을 전했고 우린 또 언제 끌려가나 서로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쿠바의 유명한 TV프로그램


당시 매일 오전이나 점심때쯤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건강 체크하러 들리는 의대생들이었다. 기침을 하는지 발열은 있는지 몇 마디의 문진 정도만 했는데 나도 그렇고 S도 그렇고 호텔 가자고 온 이민국 직원일까 봐 숨죽이고 문도 안 열어줬지만 말이다. 이것도 두려움에 떠느라 좀 진정되고 나서 알았다. 지나고 보면 웃픈 현실인데 그때만 해도 심적으로 힘든 나날들이었다.


쿠바 나시오날 호텔의 밤 (코로나 전)


J오빠는 그렇게 호텔로 이송되었다. 호텔은 몇 곳 중에 고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같이 이송된 사람들 중 일본 여자 두 명을 만났는데 그들은 집 전체를 렌트해서 살았는데도 호텔로 이송되었다. 우린 집 전체 렌트면 안 끌려간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누구는 집주인이랑 같이 살아도 안 끌려가고 누구는 끌려갔으니 무슨 기준으로 이송된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국은 미수교 국가라 한국 국적자는 호텔 이송을 시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J오빠는 미국 시민권자) 전세기로 출국시키는 과정에서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수교를 맺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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