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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Aug 10. 2020

삼시 두끼쩜오_ 쿠바편

코로나 속 쿠바에서 살아가는 신장금 #1


4월의 쿠바, 코로나 시작 후 특히 외국인에겐 더더욱 외부 활동이 어려워졌다. 거주자 비자나 있어야 어디 나가서 뭐라도 사 오는데 난 관광비자로 체류하고 있느니 집에서 은둔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중국인으로 보이니 더욱 나갈 수가 없었다. 특히 내가 사는 동네는 대놓고 “치나~”라고 하거나 캣 콜링 등을 자주 겪는 곳이라 (관광지 근처가 특히 그러함) 나가면 사람들이 “코로나 비루스 꺼져”라고 할까 봐 몸 사렸다. (스페인어로 바이러스 = 비루스)


집콕 생활이 시작되면서 냉장고에 둔 음식재료부터 들여다봤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단무지부터 해결하기 위해 김밥부터 싸는 나.


7남매 맏며느리 딸로 태어나 나름 요리는 그럭저럭 하는 편이다. 나는야 신. 장. 금.


쿠바에서 먹는 김밥은 꿀맛


일반적인 김밥을 둘둘 말기 위해서는 둥근 쌀은 필수, 쿠바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스시 쌀이나 빠에야 쌀인데 간혹 쿠바 마트에 들어올 때가 있으면 10봉지 넘게 사놔야 한다. 자주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어느 마트에 있는지도 모르니 보는 순간 바로 구입하는 것이 쿠바에서 찰진 밥 먹는 방법이다. 동남아 쌀같이 길쭉한 쌀과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먹는 둥근 쌀의 차이점을 잘 모르는 A는 왜 비싼 돈 들여서 쌀을 사냐고 했다.


“둥근 쌀은 항상 뭉쳐있지만 긴 쌀은 흩어져”

“밥 할 때 물을 더 부으면 긴 쌀도 뭉쳐져”

“밥을 금방 하면 그런데 좀 두면 다 흩어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A)”


쿠바의 현지인들이 가는 쌀파는 가게에 가면 베트남 쌀을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엄청 저렴하다. 그래서 마트에 둥근 쌀이 들어오면 금방이라도 사라질까 봐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사지 않으니까.


한 번은 지인 집에서 둥근 쌀이 없어서 길쭉한 쌀로 김밥을 말아봤는데 어찌나 김 양 끝으로 밥이 토하듯 나오던지. 쭉쭉 밥알이 나와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 와중에 그래도 김밥 말아서 썰어서 먹긴 먹었었지.


마른김도 꽤 갖고 있어서 볶음김치나 진미채, 간장에 참기름을 넣고 둘둘 말아 간단하게 김밥을 해먹기도 했다.


겉절이에는 수육이 진리


3월 말까지는 돼지고기를 구할 수 있어 겉절이에 수육을 해 먹었다. 그것이 마지막 수육 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도 두 번은 먹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배추 파는 시장까지는 걸어서 짧게는 40분~ 1시간. 40분 거리의 시장은 배추가 있을 때가 손꼽을 정도지만 1시간 거리의 시장은 거의 배추가 있었다. 보통은 4월까지는 나오고 날 더워지면 들어간다. 그 후에 배추가 나온다고 해도 아주 가끔이고 절반은 버려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


게다가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대중교통도 올 스톱. 배추 구경은 수육이랑 먹은 겉절이 때가 마지막이었다. A는 한량처럼 노는 쿠바노가 아니기에 (은근히 일하지 않고 노는 쿠바노들이 많음) 그 먼 곳까지 걸어가서 배추를 사 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냉장고만 컸으면 배추를 어마어마하게 사다가 김장김치 담그듯 담갔을 텐데, 우리 집 냉장고는 어찌나 작은지, 이래저래 코로나가 시작되는 바람에 내가 배추 사러 갈 수가 없으니 배추는 아디오스!


감자채전과 시즈닝 솔트를 뿌린 감자튀김


집콕 생활 즉, 셀프 자가격리가 시작되기 전 운 좋게 감자 한 봉지를 샀다. (감자도 현지 가격으로 사서 2배로 재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음) 덕분에 한 동안 감자튀김을 종종 먹을 수 있었다. 부엌 불 앞에서 기름과 씨름하며 땀 흘리면서 감자를 튀기고 있다 보면


‘아.. 한국이면 나가서 사 먹으면 간단한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 쿠바에서의 삶은 나에게 한국에서 누렸던 사사로운 모든 것에 감사함을 안겨주곤 한다. 그래도 감자채 전은 땀 흘린 보람이 있었다.


내 사랑 떡볶이


여기저기서 공수받은 국물떡볶이도 유통기한 생각하고 순서대로 먹어야 했다. 나름 떡볶이 부자(국물 떡볶이 3봉지 소유)인 데다가 떡국떡도 있었고 어묵도 있었으니 호기롭게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쿠바는 한인마트 같은 것이 없어 뭐든 한국에서 공수하거나 인접 국가에서 사 와야 한다. 고로 한국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 집에 쟁여둔 한국 음식이 많다. 난 그걸 아껴먹고 있었던 것뿐. 물론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이 시작되고는 아껴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말이다.


신세계 들깨 감자탕과 비비고 육개장


비자 때문에 갔던 콜롬비아에서 지인에게 받은 들깨 감자탕과 비비고 육개장은 나에게 레토르트 식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 주었다. 야채를 더 가미해서 먹으니 금상첨화! 둘 다 맛있었지만 비비고 육개장은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


쿠바라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건 안 비밀


훈제 돼지고기는 사랑입니다


4월 중순쯤부터 일반 돼지고기가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훈제 돼지고기를 A가 운 좋게 구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쿠바에서 종종 길 가다 본 적은 있었지만 살 생각은 안 해봤는데 직접 요리해 본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더 샀어야 했어. 역시 살 수 있을 때 샀어야 해’라는 쿠바에서 흔히 하는 후회를 했더라는. 그래도 꽤 양이 있어서 서너 번 나눠먹었다.


쿠바 코로나 시대, 풍요로웠던 4월까지의 찬란한 삼시 두끼 쩜오 먹방이 그리운 요즘,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나를 보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구나 싶다. 다가올 보릿고개를 예상치 못하고 쟁여둔 재료를 숨풍 숨풍 소진하고 있던 나. 그래도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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