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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Aug 15. 2020

콜롬비아 도원결의

셋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수동이가 곧 콜롬비아 칼리를 떠난단다.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가는구나.


 자전거로 세계 여행하는 수동이에겐 버스표도, 항공권도 필요 없었다. 마음의 준비만 되면 체크아웃하고 콜롬비아 칼리의 아구아카테 호스텔 최장기 체류자로서 미지급 숙박비만 내고 떠나면 되는 거였다. 자전거 점검을 며칠 전부터 하고 있다고 키미가 그러더니만.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렸나 보다.


 나도 곧 지인이 부탁한 콜롬비아 모칠라를 구매하기 위해 리오아차로 떠나야 했다. 키미도 내가 떠나고 며칠 후 바랑키야의 카니발을 보러 간단다. 리오아차에서 바랑키야까지 멀지 않은 거리라 그쪽으로 오라는데 선뜻 그 복잡한 곳에 가고 싶지가 않았다. 생각 좀 해보겠다고 하고 정말 생각만 했다.


 우리는 2월 4일에 처음 만나 거의 2주를 허구한 날 만났다. 구정이라고 같이 밥 먹고 살사 클럽 갈 때 같이 가고 간혹 학원에서 만나고 보통 대부분의 저녁을 우리 집에서 먹었지 아마?


 그간 호스텔에 놀러 갈 때마다 수동이에게 쿠바 살사를 알려줬다. 남자 파트는 잘 모르니 유튜브를 참고했는데 눈썰미가 좋아서 이게 맞네 저게 맞네 시도해보고 다시 영상 보고 그러면서 내가 리드하려고 하면 남자가 리드하는 거라고 말하던 수동이.


“살사는 남자가 리드하는 건데..”

“가만있어! 넌 쿠바 살사 모르잖아! 나만 따라와!”


맞다. 살사는 남자가 리드하는 거다.


 그렇게 선무당은 사람을 잡고 있었다. 얼마나 배웠다고 누굴 가르쳐. 그래도 호스텔 댄스 룸과 뒤뜰에서 살사 추고 놀던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쿠바 살사를 너무 추고 싶었는데 파트너가 없었던 내게 단비와 같은 존재랄까?


수동이에게 쿠바 살사 가르쳐주는 중 by 키미


 화요일이 핫한 살사 클럽에 갔을 때 멀뚱멀뚱 춤도 못 추고 있던 수동이에게 춤을 청했다. 보통 동양 남자는 못 출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잘 춤을 청하지 않는다. 살사 배우는 여자들이 자기보다 잘 추는 남자와 추고 싶어 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간혹 양인들 중에도 자신감 충만한 이들은 무조건 춤 신청을 하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나랑 합이 맞아야 살사를 춰도 재밌는 것이 현실인 것을.


자세히 보면 나와 수동이 춤 추는 모습이 보인다
그날 함께했던 다국적 모임 중심에 수동이


어떤 날은 남의 살사 학원 루프탑에 앉아 낭만적인 밤을 보냈다. 영어를 잘하는 키미 곁에는 항상 양인 친구들이, 난 수동이 곁에 앉았다. 우린 수동이의 우쿨렐레 연주와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중국 노래 중 하나를 자주 불러서 수동이를 아는 친구들은 다 따라 부를 정도. 다 같이 떼창도 부르고 맥주 한 잔 하면서 보낸 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노래하는 수동


키미가 볼일이 있어 미용실에 갔다가 난 얼떨결에 페디큐어를 하고 자를까 말까 했던 머리까지 잘랐다. 너무 싹둑 잘라버려서 어이상실이었으나 이미 자른 머리 어떡하리. 속상한 마음 고이 접고 고기나 먹기로. 같이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우리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역시 삼겹살에는 상추 무침과 김치가 찰떡궁합!

(파무침이면 더 환상)


싹뚝 잘린 머리와 패티큐어 중 수동이 발샷
삼겹살, 김치와 상추무침 & 아바나클럽 7년산


아직 젊은 키미는 밤에 다른 친구들과 레게톤 클럽에 가고 난 수동이랑 난 호스텔 근처의 루프탑 바에서 맥주를 마셨다. 둘 다 레게톤 클럽을 좋아하지 않기에. 살사 클럽이면 따라갔을 텐데 좀 아쉬웠다. 우린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곧 리오아차로 떠날 나에게 모칠라를 사서 중국 친동생에게 부쳐달라는 것은 아직도 기억난다.


콜롬비아 칼리 산안토니오의 어느 루프탑 바


내일 수동이가 떠난다는 소식에 급 주먹밥을 만들어 군고구마와 같이 먹자고 키미와 수동이를 불렀다. 사실 어제 가네 오늘 가네 그러고 있었는데 내일은 진짜 떠난단다. 뭔가 급하게 차릴만한 것을 찾다 보니 주먹밥이 떠올랐다. 남은 밥 양을 보니 딱이었다. 주먹밥과 김치 그리고 군고구마는 소박한 음식이지만 친한 사람들끼리 나눠먹기에 참 좋더라.


촐라도(cholado)라는 콜롬비아 칼리에서만 파는 디저트가 있는데 키미가 꼭 먹어야 한다며 앞장섰다. 주먹밥을 먹은 후라 디저트로 먹기 딱이었다. 우리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촐라도만 파는 골목이 있는데 호스텔 직원이 추천해줬단다. 뭔가 했더니 한국의 빙수 같은 건데 더 단맛? 이것저것 엄청 넣어 나오는데 그냥 한 번 먹을만한 경험 정도. 약간의 불량스러운 시럽 맛이 났던 것만 빼면 나쁘진 않았다.


촐라도 나오기 전까지 어플 써가며 웃긴 사진 찍었던 것이 가장 즐거웠다. 다시 집으로 와서 아바나 클럽 마시다 보니 어느새 밤. 내일 떠나는 수동이, 배웅하는 키미와 살사 학원 앞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주먹밥과 군고구마
콜롬비아 디저트 촐라도 Cholado
수동이는 중국에서 우리는 한국에서 왔다


살사 학원 앞에 세워 둔 수동이의 자전거. 앞바퀴 뒷바퀴 모두 양 사이드로 무거워 보이는 가방이 실려 있었고 앞에도 하나 더. 가방이 총 5개였는데 그 무게가 55kg 정도 된단다. 이 어마어마한 것들을 어떻게 달고 다니나. 실제로 보니 엄두가 안 나는 스케일. 저 안에 텐트며 코펠이며 드론에 노트북까지 다 있단다. 얼마 안 있어 수동이의 저 가방 중 하나를 길에서 잃어버리는 큰 사건이 발생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여행을 이어가는 수동이는 그렇게 에콰도르를 향해 떠났다.


수동이의 자전거 그리고 우리 셋


여기서 아디오스 할 줄 알고 키미가 준비한 팔찌를 셋이 하나씩 끼고 혈맹 맺듯 (도원결의냐) 저렇게 각자 힘겨루기 하며 힘껏 손목을 잡았다. 이대로 헤어질 줄 알고 시티은행을 가야 했던 나는 키미와 같이 움직였다. 근데 수동이가 따라오네? 결국 센트로까지 같이 갔다가 헤어졌다. 굳이 따라올 필요는 없었는데 수동이도 이대로 헤어지기 싫었나 보다. 키미는 수동의 모습이 시야에 사라지고 나서 눈물을 보였다. 둘이 같이 있던 시간이 거의 한 달은 되니 더더욱 그럴 듯. 각자의 마음은 조금씩 다르지만 우정이 어느 정도는 있었던 우리 셋,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난 모칠라 살 돈이 필요해 여러 번 현금을 인출하려다가 두 번째에 바로 막혀버렸다. 내일 가는데 큰일이다. 거긴 시티은행이 없단 말이다.


내 계좌 맞다고. 망할 시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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