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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Aug 17. 2020

너의 생애 첫 아이스크림 케이크

쿠바에서 아이스크림 케이크란?


 A의 생일. 내 생일과 불과 2주도 차이 나지 않는 그의 생일이 다가오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난 케이크 만드는데 필요한 베이킹파우더도 없고 쿠바에서 홈메이드 케이크 만들 때 쓰는 전기밥솥도 없다. 오븐이 있긴 했지만 써본 적도 없고 오븐용 그릇도 없을뿐더러 오븐 안에 넣을 때 필요한 대형 스댕 쟁반조차 없다. 고로 오븐은 아웃.


 베이킹파우더는 없지만 베이킹 소다는 있었다. 그건 케이크 만들기엔 부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패스. 홈메이드 케이크도 아웃. 케이크를 나가서 사 와야 하나? 걸어서 30-40분 거리의 베다도 까지 가야 하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직 집 근처 야채시장만 오고 가는 상황이었고 중국인으로 오인해서 코로나 때문에 뭐라고 할까 봐 외출을 되도록 삼가고 있었던지라 선뜻 갈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케이크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 그렇다고 A가 나에게 만들어준 플란을 그대로 하기도 그랬다.


어쩌지? 으아! 머리 아파 ㅠㅠ


 순간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다. 당시 퍼먹는 아이스크림은 종종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만드는 방법을 찾아봤다. 근데 대부분 크림치즈나 뭔가가 필요했다. 크림도 없고 크림치즈는 더더군다나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나.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레시피. 오레오 아이스크림 케이크.


맞다! 나에겐 오레오 과자가 있었어!


 얼마 전 A가 사 왔는데 안 먹고 뒀던 것이 생각났다. 오레오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내가 원하는 그런 케이크는 아니었는데 만드는 방법만 참고하고 없는 재료는 무시하고 모양은 여기서 가능한 것으로 하고 하면 얼추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바로 A가 먹을까 봐 오레오를 서랍 안에 숨기고 A에게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꼭 사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꼭 사 와! 바닐라야 바닐라!”


그러던 어느 날, A의 전화가 왔다.


“바닐라는 없고 딸기만 있어”

“바닐라 없대? 알았어 그럼 딸기라도 사와”


그렇게 A의 생일 전 날 딸기 아이스크림을 구했다.

오레오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만들기 쉽다.



집에서 만드는 오레오 아이스크림 케이크


1. 아이스크림 케이크 틀 안을 랩으로 감싼다.

2.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단에 꽂을 오레오 3-4개를 남겨둔다.

3. 나머지 오레오 쿠키 안의 크림을 모두 제거해 따로 모아둔다.

4. 오레오 쿠키 40% 정도를 아주 잘게 부순다.

5. 1/4는 3보다 큼지막하게 적당히 부순다.

6. 1/4는 부수지 않고 남겨둔다


집에서 아이스크림 케이크 만들기


7. 제일 하단에 잘게 부순 오레오와 아이스크림 2-3스푼을 넣고 잘 섞은 후 깔아준다.

8. 덜 녹은 아이스크림을 한 층 깔아준다.

9. 6번의 부수지 않은 오레오를 한 층 깔아준다.

10. 오레오 사이의 제거된 크림을 한 층 덮는다.

11. 5의 크게 부순 오레오를 나머지 아이스크림과 섞어 제일 상단에 깔아준다. (조금 남겨서 다음 단계에 씀)

12. 2번의 온전한 오레오를 케이크 중앙 부에 장식하고 11에서 조금 남긴 오레오 조각을 나머지 부분에 장식한다.

13. 냉동실에 넣어 얼리면 끝

(초 들어갈 자리에 구멍을 내고 얼리는 것이 좋다)




 쿠바는 더운 나라니까 아이스크림을 상온에 내놓으면 금방 녹는다. 그래도 냉장고 성능이 좋아서 꽝꽝 얼더라는. 랩을 벗기니 측면 모양이 좀 쭈글쭈글이었지만 그래도 스댕이랑 잘 분리되어서 다행이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틀만 괜찮은 거 있으면 더 완벽할 듯.


그렇게 완성된

내가 처음 만든 아이스크림 케이크

너의 생에 처음 아이스크림 케이크


앙증맞은 홈메이드 딸기 오레오 아이스크림 케이크


“A야. 아이스크림 케이크 처음 먹어보지?”

“어. 처음이야”

“쿠바는 이런 거 없지?

“없는 거 같아. 이거 팔아봐.”

“불법이잖아! 그리고 힘들어. 재료비가 너무 비싸”

“이거 팔면 너도 나도 사려고 할걸?”

“그건 그렇지. 얼마면 팔리려나? 하하”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단 장식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
아이스크림 케이크 단면, 어떻게 층층이 쌓았는지 보이쥬?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전날 저녁에 만들어 둬서 준비할 것이 없었지만 난 A가 제일 좋아하는 김밥과 마지막 유부초밥을 만드느라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김밥도 마지막 유부초밥도 마지막.


“나 어렸을 때, 엄마가 소풍 가는 날 아침에 김밥을 싸줬어. 보통 이른 아침에 싸서 점심 도시락으로 먹거든. 이렇게.”


마지막 단무지로 만든 김밥과 유부초밥


 점심에 먹으라고 도시락까지 싸주고 나니 어찌나 뿌듯하던지. 너무 좋아라 하는 A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이거 사람들 보여주고 자랑해야지~ 아무도 안 줘야지~”


 신나 하는 모습이 마냥 어린아이 같았다. 김밥 싫어하는 외국인은 본 적이 없다. 그렇고 말고. 그리고 유부초밥도 굉장히 좋아한다.


 이 당시만 해도 유부초밥이 A의 최애 요리였는데 지금 어떨지 모르겠다. 그 후로 고사리와 숙주나물에도 푹 빠져버려서... 게다가 볶음 김치까지...


 저녁은 자주 하지 않는 양식에 도전! 매일 한식만 먹여서 좀 미안한 마음에 생일 기념 스파게티를 준비했다. 알리오 올리오 만든다고 했는데 레스토랑 비주얼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네.


내맘대로 만드는 알리오올리오와 맛탕 그리고 수제 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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