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유 Aug 20. 2020

비가 오는 날 빨래를 한다

빨래만 하면 비가 온다


 아침마다 일기 예보를 꼬박꼬박 챙겨보진 않는다. 밖에 나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는 이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주부가 아닌데 주부의 삶을 사는 나.


 매일 끼니를 챙겨 먹고 청소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는 일이 세탁이다. 근데 내가 세탁기를 돌리는 날이면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 빨래를 하는 것인지 빨래만 하면 비가 오는 것인지. 이게 무슨 조화 속인가?


 쿠바 아바나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세탁기는 골동품 중에도 골동품이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세탁기를 다른 집보다 늦게 샀다. 처음에는 탈수 기능만 있는 짤순이를 샀다가 나중에 통돌이 세탁기를 샀다. 그리고 드럼 세탁기가 나왔을 때도 세탁기를 한 번 교체했는데 역시나 통돌이 세탁기. 드럼 세탁기는 물이 많이 들어간다 해서 구경도 못했다.


 근데 이건 무엇인가? 세탁하는 통과 탈수하는 통이 분리되어 있는 세탁기다. 친한 언니 말로는 아주 어렸을 때 그런 세탁기를 본 적이 있단다. 게다가 우리에게 친근한 대우전자 제품이다.


도대체 언제 나온 거지?


쿠바 아바나의 골동품 세탁기


골동품 세탁기 사용법


우선 세탁기 기능 설명 (다이얼 왼쪽부터)

세탁 시간 설정, 탈수 시간 설정, 기능 설정


 제일 오른쪽의 기능 다이얼에서 세탁 기능 중 보통으로 설정 후 사람 손으로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고 왼쪽 통에 세탁물을 넣는다. 세제를 넣고 제일 왼쪽 세탁 시간 설정 다이얼을 돌리면 세탁 시작.


 세탁이 끝나면 기능 다이얼을 탈수로 돌린다. 그러면 물이 빠지기 시작. 모든 세탁물을 오른쪽 탈수통으로 옮긴 후, 뚜껑을 닫고 탈수 시간 다이얼을 돌리면 탈수 시작.


 헹굼은 세탁과 마찬가지로 모든 세탁물을 왼쪽 통으로 다시 옮겨 또 물을 틀고 헹굼 시간(세탁 시간)을 설정하여 돌리면 된다. 다시 탈수와 헹굼 과정을 반복하면 세탁 끝.




 반수동 세탁기라고 봐야 할지. 아무튼 매번 모든 과정에 인간의 손이 필요하다. 세탁기 돌리고 30분이나 한 시간 기다리면 탈수까지 완료되어 있는 마법과 같은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 세탁기.


 물론 쿠바의 모든 집에 저런 세탁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돌이 있는 집도 있고 드럼 세탁기가 있는 집도 있다. 세탁기 없는 집도 많고 저런 세탁기를 가지고 있는 현지인 집이 많을 뿐. 고로 난 현지 쿠바인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탁이 끝나기까지 세탁기 앞에서 세탁 끝나면 탈수하고 끝나면 헹구고 끝나면 탈수하고 하지 않는 이상 세탁이 완료될 때까지 최소 한 시간은 걸린다. 헹굼을 몇 회 하느냐, 다른 집안일을 하느냐에 따라 세탁 소요시간은 더 길어지기 마련이다. 세탁기를 두 번이라도 돌리는 날에는 세탁하는데만 3시간은 소요된다.


 빨래는 쿠바 우리 집 테라스에 해가 들어오는 시간인 2시부터 널면 1-2시간이면 마른다. 쿠바의 강한 태양이 주는 선물이랄까? 하지만, 4-5월에는 오후만 되면 어찌나 비가 자주 오던지. 게다가 내가 빨래만 하면 비가 오네? 신기하게도 주변 이웃 쿠바인들은 비가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지 비 오는 날은 빨래를 하지 않더라. 나만 비 오는 날 빨래를 했다.


 매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니 빨래를 마치고 나면 12시-1시인 이유도 있다. 오전에는 보통 비가 안 와서 오전에 빨래를 널어 비오기 전에 걷어도 되긴 하는데 쿠바 코로나 시대에 살다 보니 게으름뱅이가 되어버렸다. 일찍 일어날 이유도, 일찍 자야 할 이유도 없으니.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
비가 오면 빨래는 실내에 넌다


 비가 오면 실내용 빨랫줄을 집안 여기저기에 걸어 빨래를 널었다. 햇볕에 말리는 빨래의 보송보송함은 기대하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매번 비 오는 날에만 빨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윗집이 빨래하는 날은 거의 해가 쨍한 날이다. 그런 때 하는 것이 좋다. 쿠바 우리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 바로 테라스에서 빨래를 널고 소파에 앉아 쉬고 있으면 그것만큼 개운한 일도 없다.


이런 풍경이 쿠바지. 안 그래?


빨래 끝! (옥시XX 생각나네)


쿠바 우리집 테라스 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생애 첫 아이스크림 케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