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와 숙주를 좋아하는 쿠바 남자
A는 쿠바 사람이다. 쿠바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30년 넘게 살고 있다. 여느 쿠바 사람처럼 고기와 단 음식을 좋아하고 탄산음료가 있으면 수시로 챙겨 마신다. 물보다 탄산음료나 주스를 더 좋아하는 A. 한식을 처음 접한 것은 나를 만나고부터였다.
처음 우리 집에 초대했을 때가 불닭볶음면을 먹었을 때던가? 매운 음식 먹어보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던 A. 같이 살던 동생이 매운맛을 보여주겠다며 포크로 크게 둘둘 말아 줬다.
어후... 저렇게 줬다가 죽는 거 아니야?
A는 불닭볶음면을 입안에 넣고는 잘 씹어 넘겼다. 전혀 매워하는 기색이 없어 놀랐는데 꿀꺽 삼키자마자 동생이 바로 한 번 더 포크로 말아주려니 잠깐! 하고는 자기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우린 다 같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럼 그렇지. 맵지 당연히!
나도 매워서 안 먹는 불닭볶음면인데.
나중에 물어보니 맵긴 맵지만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맵다고 하더라. 먹을 수는 있을 정도라고. 그 후로 매운 음식이라고 말하면 뭐든 불닭볶음면을 기준으로 그것보다 매운지부터 물었다. 그럴 리가 있나.
A는 뭐든 잘 먹었다. 특히 멸치를 어찌나 사랑하던지. 처음 멸치를 만난 날, 놀란 토끼눈으로 이게 뭐냐고 물었다.
“생선인데 엄청 작은 걸 통째로 말린 거야”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더니 맛있다고 멸치볶음을 다 먹어치웠다. 쿠바에 반년 정도 있었을 때라 나에게도 소중한 멸치였지만 당시 아직 많이 남아있는 상태라 쿨하게 만들어줬다. 지난여름에 한국을 다녀오면서 가져온 것도 있고 11월에 지인이 가져온 것도 있고 해서 멸치도 중멸치 잔멸치를 다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멸치 사이즈에 따라 다른 모습에 사진을 또 찍던 A.
“나 이거 조금만 싸줄 수 있어?”
“엥? 이걸?”
“친구들 보여주려고”
그렇게 정말 주먹 안에 들어갈 정도면 된다고 하여 중멸치 조금을 봉지에 싸줬다. 그러나 멸치 사랑 지극했던 A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으니!!!
지난가을쯤, 손님 중 한 분이 진미채를 갖다 주셔서 마요네즈에 버무리고 고추장과 고춧가루 설탕과 올리고당, 다진 마늘을 넣어 진미채 무침을 만들었다.
“이건 뭐야?”
“오징어 말린 것을 가공한 거야”
“오징어?”
“(오징어 헤엄치는 시늉함)”
“아!!”
그날, A의 최애 한식은 멸치볶음에서 진미채 무침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빵 중간을 잘라 그 안에 진미채 무침을 넣어 먹기도 했다. 문제는 그가 갑각류 및 어패류 알레르기가 있었다는 것. 어려서부터 있었는데 계속 먹었더니 좀 나아졌단다. 그리고 나를 만나고 계속 먹어왔던 것이다. 어느 날부턴가 멸치를 안 먹길래 물었다.
“왜 안 먹어?”
“의사가 알레르기 때문에 당분간 먹지 말래”
올해는 안 먹고 내년엔 먹을 거라며 올해는 안 먹는단다. 나도 멸치며 진미채며 거의 떨어져 가던 상황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A는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지라.
그러다 쿠바에 코로나가 시작되고 봄이 지난 어느 날, 정말 아껴둔 마지막 진미채를 해치운 다다음날 A가 물었다.
“그거 어딨어? 오징어” (오징어 헤엄치는 시늉 하며)
“그거 마지막 꺼 엊그제 다 먹었는데.....”
“오늘 생선 먹었는데 괜찮아서 이제 먹어볼까 했는데...”
이제 진미채가 없다는 실망감을 온 얼굴에 드러내던 A를 보고는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다음에 한국 다녀오면 사 오겠다고 말했다. 진미채 외에도 쥐포도 사랑했던 A. 안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있나 싶을 정도로 뭐든 좋아했다. 참고로 우린 보통 영어로 대화하는데 영어 단어를 A가 이해를 못 할 때는 바디랭귀지로 우선 말하고 못 알아들으면 스페인어를 찾아 알려준다. 그래서 웃프지만 오징어 헤엄치는 시늉을 해야 했다.
쿠바에 코로나가 시작되고 제일 먼저 만든 것이 소고기 볶음 고추장이었다. 이래저래 집콕 생활에 필요할 거 같았고 다진 소고기가 생겨 큰 맘먹고 만들었다. 의외로 고추장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고추장 여유가 많아야 만들 수 있는 것이 소고기 볶음 고추장이다. 만들고 나면 “에게게~~ 이게 뭐야” 할 정도로 양이 확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소고기 볶음 고추장을 만들었으니 비빔밥을 만들어야겠지?
한국에서 먹었던 비빔밥이라 함은 제사 끝나고 남은 나물 다 부어 고추장 한 숟갈 떠서 참기름 넣고 비벼먹거나 깍두기나 잘 익은 열무김치 중간을 한 번 가위로 잘라 넣고 고추장 한 숟갈에 참기름 넣어 비벼먹는 것이 전부였지만, 외국인인 A에게 한국음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최대한 예쁘게 만든 비빔밥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비빔밥에 쓰려고 아껴둔 말린 고사리와 말린 호박을 물에 불려 각 재료에 맞게 들기름과 국간장, 다진 마늘을 넣고 볶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쿠바에서 먹는 한국 비빔밥.
너무 맛있다며 잘 먹던 A. 항상 뭐든 잘 먹어줘서 고마웠다. 고사리에 대해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하니 더 좋아하던 A. 쿠바 사람은 기본적으로 소고기를 좋아한다. 소고기 매매가 불법이기도 해서 더 그럴 듯.
비0고 육개장이 있어 끓여줬더니 국물이 너무 맛있다며 최고의 음식이라 극찬했던 A. 소고기에 고사리, 대파까지 팍팍 들어가 있으니 맛이 없을 수 없지. 특히 고사리를 보더니 비빔밥에 넣었던 그 채소 아니냐고 묻는다. 맞아!
간혹 쿠바 야채시장에서 숙주를 팔기도 하는데 매번 상태가 안 좋아 잘 안 샀었다. 상태가 좋든 안 좋든 뿌리 부분이 더러워 다 제거해 먹어야 했으니 나물 다듬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날따라 숙주나물이 먹고 싶어서 숙주를 사다 국간장과 함께 무쳤다. 숙주나물을 먹어보더니 이거 어떻게 만드냐며 요리방법을 묻기까지 했다. 쿠바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인데 새로운 요리가 되었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그렇게 멸치와 진미채만 좋아하던 A는 이제 고사리와 숙주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저번에 먹은 비빔밥 사진 보여주며)
“오늘 비빔밥 해줄게!”
“근데 그거(고사리) 없잖아”
비빔밥에 고사리 없다고 고사리부터 찾던 A. 비빔밥 두어 번 먹고 나니 고사리도 모두 동나고 숙주와 수박 흰 부분으로 만든 나물로 비빔밥을 해야 했다. 근데 왜 저번보다 맛있지? A와 난 그 날 서로 이번 비빔밥이 제일 맛있다고 극찬하며 대화 없이 밥 먹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오랜만에 먹어서?
결국 다음 날, 비빔밥을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도시락을 싸 달라는 A. 계란은 거기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길래 계란 프라이만 빼고 싸줬다. 다들 비빔밥 보더니 이게 뭐냐며 난리 났다고 하더라. 하하.
치킨에 양념을 만들어 양념치킨을 만들어주면 접시에 뭍은 소스까지 다 먹을 정도로 양념치킨 양념을 좋아하고 소시지 야채볶음도 소스까지 다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A. 프라이드치킨과 소시지를 코로나가 시작되고 구하기 어려워져 레몬맛 나는 훈제 치킨으로 만들어주고 소시지 야채볶음은 최근에야 소시지를 구해서 한 번 해줬다.
뭐니 뭐니 해도 짜장밥만큼 A가 반가워하는 음식도 없다. 다른 요리에 비해 만들기 가장 쉬운 짜장. 쿠바에서 코로나가 시작되고 한식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랫동안 쟁여둔 내 한식 곳간을 열어보니 카레가루보다 짜장 가루가 더 많았다. 덕분에 A는 행복한 짜장 밥상을 한 달에 서너 번은 받을 수 있었다.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고는 유부초밥을 먹으면 유부초밥에 빠지고 계란 장조림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A는 그 외에도 계란말이, 찜닭 등 내가 해주는 모든 음식을 사랑했다. 김치까지 좋아한 그와 김치전쟁을 할 지 꿈에도 몰랐다.
한국 가면 난리 나겠는데?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