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라서 더 그리운 엄마의 향기
쿠바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사실 쿠바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는 아니다. 여기서 이렇게 오랜 기간 살 생각도 없었다. 쿠바가 너무 좋아서 쿠바에 계속 오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했다.
배낭여행만 다니던 내가 콜롬비아에서 살사를 배우며 여행보다 더 재밌는 뭔가를 알게 되었고 3년 만에 간 쿠바에서 쿠바 살사의 매력에 푹 빠졌던 것이 큰 이유였다. 그렇게 콜롬비아에서 쿠바로 이동하여 쿠바 살사를 배우며 장기 체류를 하다가 A를 만났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니 벌써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그중 반년은 코로나로 인해 쿠바 아바나에서 집콕 생활을 하며 음식 만드는 일에만 열중하며 끼니 챙겨 먹는 일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쿠바에서의 집콕 생활은 매우 단조롭다. 아침은 빵, 점심은 어제 남은 음식으로 대충 먹고 저녁만 신경 써서 먹는다. 매일 손수 차려먹는 밥상에 지쳐갈 때, 간혹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엄마가 생각나게 하는 요리를 만든다. 자주 먹을 수 없는 음식이지만 아주 가끔 만들 수 있는 엄마표 요리, 바로 감자 고추장찌개와 알타리(총각김치)를 쏭쏭 썰어 만든 김치 된장찌개다.
쿠바는 감자가 귀하다. 작년 가을이던가, 당시 살던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겸 시장도 볼 겸 해서 밖에 나왔다. 자주 오고 가는 동선에 있는 평소 사람이 거의 없던 시장에 대 여섯 명 이상의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플라타노라는 초록 바나나를 주로 파는 시장이었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줄을 선다? 줄도 기껏 5-6명? 그래서 나도 줄을 섰다. 엉겁결에 섰다. 뭘 파는지 물어보니 감자란다.
“나 외국인인데 살 수 있어?”
“그럼”
혹여나 현지인들에게만 팔까 봐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상관없단다. 감자를 시장에서 처음 산 날이었다. 그렇게 쿠바 사람들이 감자를 사서 소분을 한 후, 두 배 이상의 값으로 길에서 팔던 것이다. 감자의 현지 가격을 몰랐던 난 지금까지 엄청난 바가지를 쓰고 살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나? 그날 이후 쿠바에서 감자를 현지인 가격으로 산 적이 없으니. 그만큼 그 날은 꽤나 운이 좋았다.
감자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콜롬비아에서는 자주 해먹 전 감자 지짐이, 감자 고추장찌개라고 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게다. 감자도 지져먹는다고 하고 김치도 지져먹는다고 했던 엄마. 감자 구하기 어려운 쿠바에 있다 보니 아주 가끔 감자를 지져먹는 날엔 그렇게 엄마가 생각이 났다.
“엄마! 감자 지지는 거 어떻게 만들어?”
“고추장 한 숟갈 넣고 설탕 적당히. 양파 넣고 다진 마늘 넣고 끓여.”
언제나 엄마가 알려주는 레시피는 ‘적당히’다. 이젠 적당히가 얼마만큼의 양인지 묻지 않는다. 찌개를 끓이면서 맛을 볼 때 엄마가 해줬던 찌개의 맛을 기억해내면 얼추 비슷한 찌개가 탄생한다. 칼칼하면서도 살짝 달착지근한 감자 고추장찌개는 매콤한 것이 당길 때 딱 좋은 요리다. 감자 하나 정도를 쿨하게 쓸 수 있을 때, 양파가 넉넉하게 있을 때 끓여먹으면 참 맛있다. 누군가는 떡볶이 맛이 난다고도 하더라.
“김치로도 된장찌개를 만들어?”
누군가 물었다. 어려서부터 항상 먹어왔던 거라 김치로 당연히 된장찌개를 만드는 줄 알았는데 다 그러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우리 집에서는 배추김치로도 된장을 쪄먹지만 (엄마는 된장을 찐다고 표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알타리(총각김치)를 쏭쏭 썰어 만든 된장찌개다.
“엄마! 건더기 많이 넣어! 무 부분!”
총각무가 많이 들어간 엄마표 김치 된장찌개는 칼칼하면서도 맛있었다. 쿠바는 무뿐만 아니라 총각무도 없으니 레디쉬로 깍두기를 담가먹고는 좀 쉬었다 싶거나 김치 양이 많을 때 간혹 나만을 위한 요리로 김치 된장찌개를 끓여먹었다. 내가 만든 레디쉬 김치의 생김이 된장찌개에 넣기 위해 자른 총각무와 비슷해서 총각무 대용으로 된장찌개 만들기 제격이었다.
레디쉬만 쉽게 구하면 주구장창 깍두기 비슷한 레디쉬 김치만 해 먹을 텐데, 쿠바에 코로나가 시작된 후 6월 이후로 레디쉬를 본 적이 없다. 6월에도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시장에서 겨우 레디쉬를 사 왔을 정도로 집 주변 야채시장에서는 거의 팔지 않을 정도 구하기 어려웠다. 고로 레디쉬로 만든 김치 된장찌개는 몇 번 못 먹었다.
자주 못 먹으니 더 아쉽고 그리웠을지도.
감자는 4월에 사서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제거하여 냉장 보관하여 야금야금 먹다 이제 한 개 남은 상태. 감자튀김에 카레며 짜장이며 된장찌개까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는 감자가 귀한 쿠바에 사는지라 감자 고추장찌개라는 호사는 누리기 참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이번 쿠바 코로나 집콕 생활을 하며 무수히 많은 요리를 해 먹다 보니 정작 감자 고추장찌개는 해 먹질 못했다.
재료가 없으니 된장이 많다 한들 레디쉬로 된장찌개 만들기 어려운 것이고 감자가 없으니 양파가 있다 한들 감자 고추장찌개를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괜스레 엄마의 집밥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