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나눔 천사와 나눔 동지 모두 안녕
올해 6월은 참 별일이 많았다. 쿠바에 살면서 이렇게 고된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지금 살고 있는 집에도 문제가 많았고 내 개인적인 문제도 그랬다. 그 와중에도 힘이 되어준 나눔 천사 C오빠와 나눔 동지 S는 나에게 너무 고마운 존재였다.
쿠바도 그렇지만 해외에 살다 보면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이 바로 한국 사람이다. 그걸 간과하고 누구든 쉽게 믿고 속 터놓고 살다가 뒤통수를 또 맞긴 했지만 모두가 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특히 나눔 천사 C오빠는 속없이 잘해주시는 분이다. 난 그가 어떤 성품을 가진 사람인지만 알고 그 외의 그가 이야기하지 않은 사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굳이 본인이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데 캐묻거나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예의도 아닐뿐더러 남 뒤를 캐가며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6월에 우리 동네인 센트로 아바나에서 도보로 30분~1시간 정도 떨어진 베다도에 갈 일이 있어 A와 함께 두 번 정도 C오빠네 집에 방문해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오빠네 집에 가면 매번 진수성찬이 쏟아진다. 특히 와인을 좋아하시는데 내가 무슨 와인을 좋아하는지 기억해뒀다가 그걸로 준비해주시는 것이 다반사.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고작 고춧가루 남은 것 탈탈 털어서 나누는 것과 둥근 쌀 구했다고 갖다 드리는 것, 그리고 간혹 필요한 정보 얻어다 드리기 정도다. 나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으신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자주 하는 떠보기 그런 것도 없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불편함 없는 사이가 된 것 같다. 서로 줄 수 있는 건 주지만 바라는 게 없으니까.
S와는 이번 쿠바 코로나 시대 이후로 친해졌다. 매일 연락하며 오늘은 무슨 요리를 만들지 아이디어를 나누고 간혹 먹을 것도 나누며 사이가 돈독해졌다. 사람과의 관계는 내 마음대로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냈어도 그 사이 알게 모르게 균열이 생겼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생각 없는 말들 때문에 계속 상처 받았을 수도 있다. 이렇게 단기간 안에 급격히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역시 뭐든 합이 잘 맞아야 한다. 우린 대화를 나누는 데 있어서 상대방 신경 거슬릴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린 보통의 생각을 가지고 보통의 삶을 살아왔기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물론 난 S와 성향은 다르다. 난 할 말 다 못하고 참는 스타일이지만 S는 아니다. 그 점은 정말 본받고 싶다. 그렇다고 바보같이 당하고만 살진 않았다. 정의 구현을 위해 또는 사회 악을 응징하기 위해 때로 행동에 나서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쿠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의지했던 이들이 모두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어찌나 섭섭하던지. 떠나기 전 우린 만찬을 가졌다. S집에서 한 번, C오빠네 집에서 한 번, 그렇게 헤어짐의 아쉬움을 한 끼의 밥상으로 달랬다.
S의 귀국 3일 전, S의 집에서 먼저 한 끼의 밥상을 차렸다. 우리 집은 식탁이 여의치 않은 데다가 거실까지 에어컨 바람이 들어오기엔 좀 애매하기도 해서 우리가 움직이기로 했다. 요리하기엔 재료가 많은 우리 집이 더 좋은 환경이라 미리 준비해갈 수 있는 것은 다 준비했다. 올해 초 손님이 주신 소중히 아껴뒀던 골뱅이 통조림과 파칼로 썰은 파채 및 각종 야채를 준비했고 C오빠네 집에서 얻어온 생선살이 많이 붙은 생선뼈와 쌀을 가져갔다. (당시 쿠바에 쌀 구하기가 어려웠음)
드디어 골뱅이를 먹게 되는구나!
쿠바에서 골뱅이라니!
오늘의 메뉴는 골뱅이 소면과 지리탕 그리고 치킨 바비큐다. 골뱅이 소면과 지리는 재료는 내가 집에서 미리 준비해 가고 버무리고 요리하는 건 S네 집에서 하기로 했다. 통닭 바비큐는 S가 쿠바 친구를 통해 오븐에 구워올 예정. 그렇게 우린 뚝딱뚝딱 요리를 했고 그렇게 한 상이 완성되었다. 통닭은 속이 덜 익어서 해체 후 한 번 더 익혔다. 지리는 무가 없었지만 그래도 신선한 생선이라 그런지 시원한 맛이 꽤 괜찮았다.
어디서 배웠는지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빈 손으로 가질 않는 A는 S네 집에 올 때도 아바나 클럽 3년 산을 사 왔다. 평소엔 그것보다 더 싼 럼을 마시는데 선물용이라 그런지 신경 쓴 것 같았다. (칭찬해!) S가 미리 사 둔 맥주와 미리 만들어 둔 푸딩 디저트까지 먹으니 배불러 죽을 뻔. 너무 늦게까지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던 A를 데리고 나오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쿠바에서 경험한 너무 근사하고 맛있는 저녁식사였다.
다음 날은 C오빠네 집으로 향했다. 이제 내일모레면 귀국하시니 인사할 겸 겸사겸사 찾아갔다. 이미 짐 정리를 어느 정도 해 두신 상태라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었다. 지난번엔 생선구이가 메인이었고 이번엔 닭볶음탕과 생선찜이 메인이었다. 언제나 C오빠의 요리는 언제나 맛있다. 게다가 와인까지!
스페인어를 잘하셔서 A와도 무리 없이 대화가 가능하시니 이것저것 쿠바에 대해 더 잘 아셨을게다. A는 답답한 선비 스타일도 아니고 뭐든 자기가 알아서 한다. 안되면 되게 하라 수준으로 해내고 안 해 본 일 없이 경험도 많아 쿠바의 삶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은 편이다.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면이 좋았다.
이미 전부터 한국 가면 자가 격리할 집을 알아보셔야 한다는 것과 에어비앤비에서도 자가격리 가능하다는 것 등등을 알려드렸는데 어떻게 하실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진 않았다. 곧 한국에서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오빠가 주신 한식 재료를 한 보따리 가득 안고 집으로 왔다. 항공편이 일주일 전에 갑자기 5일 당겨지는 바람에 계란이 많이 남았다는 오빠는 나에게 계란이며 버터며 당시 쿠바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을 다 주고 가셨다. 게다가 참기름과 조청 쌀엿이라는 매우 귀한 한국산 쌀엿까지.
한식 재료를 절대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쿠바에서는 뭐든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하다.
이제 정말 덩그러니 혼자 남게 생겼다. A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한국으로 갔을 텐데.
그러나 다음 날 냉장고가 고장 날 줄 꿈에나 알았겠는가? 내 계란!! (쿠바에서는 계란이 매우 소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