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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Sep 14. 2020

경찰서만 세 번째

쿠바의 경찰서에 가다


공권력이 강한 나라 쿠바, 죄가 없어도 쿠바의 경찰이나 군인만 보면 괜스레 움츠러드는 이유는 뭘까?


난 쿠바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당한 일(도둑) 때문에 한 번, 집주인 때문에 한 번, 그리고 A 때문에 한 번, 이렇게 총 세 번 경찰서를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경찰서 문지방도 안 넘어 봤건만!


첫 번째는 작년 가을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였다. 옆 방에서 자던 친한 언니의 방이 모두 털려서 하루 종일 조서를 작성하며 경찰서에 머물렀다. 당시 집주인이며 경찰이며 하다못해 내 쿠바의 한국인 지인들조차 그 누구도 도움하나 주지 않았다. 생판 모르는 남도 도와주던 사람이 가장 곤경에 처한 나를 외면하고 가십거리처럼 남에게 내 도둑맞은 이야기를 하고 다니며 험담만 늘어놓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왜 몰랐을까. 내 앞에서는 낯짝 좋은 모습만 보여서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진정 사람 보는 눈 없는 것이 참 안타깝다. 강 건너 불구경이란 이런 것이며 그 불구덩이 안에 하루 종일 갇힌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존재는 바로 A였다. (쿠바에서 도둑맞은 이야기는 ‘쿠바에서의 일 년’에서 자세히 기술할 예정)


두 번째는 작년 말, 갑자기 집주인이 “너 이민국에 오늘 꼭 다녀와야 한다”며 당일 오전에 통보해주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날 저녁, 비자 만료로 인해 멕시코에 다녀와야 했던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서둘러 A와 함께 매번 비자 연장하러 가는 이민국에 갔더니 거기가 아니었다. 집주인이 말한 이민국은 우리 집의 행정구역인 센트로 아바나의 경찰서 내부 이민국 사무실이었다. 한 번 허탕치고 간 경찰서의 이민국 사무실에서 난 쿠바에서 장기 체류하는 이유와 무슨 돈으로 렌트비와 생활비를 내고 사는지 등 그들에겐 쓸데 있지만 나에겐 쓸데없는 질문에 답변을 하고 무사히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왜 불렀나 했더니 집주인이 내 직업에 대해 잘못 이야기해서 벌어진 해프닝. (차비 내놔 집주인아!)


세 번째는 코로나가 터진 올해 6월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쿠바에서의 단조로운 삶을 살던 나는 오후 2시쯤, 다급하게 A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거주지역 아닌 곳에 쓸데없이 돌아다니면 문제가 되는 때였는데 (코로나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이동만 허용) A가 나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안 믿어줬다며 주소가 기재된 까사 영수증과 여권 들고 얼른 경찰서로 와달라고 했다. 더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그렇게 뭔가 큰일이 터진 것을 직감하고 경찰서로 향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미 경찰서 앞 작은 공원에는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마스크를 낀 채 여럿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스페인어 능통자인 S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입구에 서 있는 청년 경찰에게 다가가 S가 보내준 자세한 상황 설명이 된 스페인어 번역본을 보여줬더니 알았으니 저기서 기다리란다. 경찰서 맞은편에는 교통섬 같은 아주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람들이 꽤나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긴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타인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으려고 우선은 서 있었다.


먼 거리에서 경찰 얼굴이 뚫어질 정도로 바라보고 있던 나는 십여분 후, 그의 손짓에 쪼르르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경찰 말로는 마스크를 코 아래로 내려서 연행되었단다. 그럴 리가??!! A는 쿠바에서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우리 집에 들어올 때도 신발 벗고 발까지 손세정제로 닦고 들어오는 보기 드물 정도로 철저한 쿠바인인데 그가 마스크를 코 아래로 내렸다니 믿기지 않았다. 옷도 한 번 입은 옷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묻었을지 모른다며 바로 세탁기행. 밖에서 뭔가를 사 오면 봉지부터 닦고 케이스도 닦는 A가 그랬을 리 만무했다. 쿠바 정부가 코로나를 철저하게 자기 통제하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면 단연코 A가 받아야 할 정도로 과하게 깔끔을 떨다시피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람?? 최근엔 빵을 사 와서는 빵 파는 사람이 돈 만진 손으로 빵 담아줬다며 빵을 다 버리라고 할 정도인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결국 빵을 10개나 버렸다)


우선은 경찰이 계속 기다리라고 하길래 공원 벤치의 빈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쿠바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마스크를 코 아래로만 내려도 안된다. 경찰이 주의를 주거나 연행되고 큰 벌금을 내게 되어 있었다. 여기서 큰 벌금이란 50불 이상의 돈으로 쿠바 인의 평균 월급(20-30불)을 생각하면 꽤 큰돈이다. 밖에 나오려면 마스크는 무조건 착용해야 했다. 코로나 이후로 전 국민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어 있었고 그 날은 마스크 불량 착용 집중 단속 기간인지 경찰차로 연행되는 쿠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모두 마스크는 착용한 상태)


정말 마스크 때문일까? 그럴 리가 없는데...
물어볼까? 아 괜히 물어봤다가 불똥 튀면 ㅜㅜ


S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이게 도대체 뭔 일인가 걱정을 한 아름 안고 한 시간을 넘게 그렇게 덩그러니 기다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입구의 청년 경찰에게 다가갔다. 이번엔 다른 아저씨 경찰도 함께 있었다. 아무래도 코로나 이후 보기 드문 치나(중국인)가 다가오니 호기심이 발동했나 보다. (난 한국인이지만 그들 눈엔 중국인으로 보이니 치나로 보였을 듯하여 치나로 표기)


“내 남자 친구 이름은 000인데 안에 있는 거 맞습니까? 이 사람입니다.”

(경찰이니 공손하게 한국어로 번역)


“잠깐만요” 하고는 A의 사진을 보여주려고 사진을 뒤적이는데 왜 이렇게 사진 찾기가 어려운지! 아저씨 경찰이 내 사진첩 뒤적이는 것을 함께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어떻게 다 음식 사진이지??!!!”

“맨날 집에 있으니까요”

“그렇지! 집에만 있으니 음식 사진이지 ㅎㅎ”


내 대답에 순간 너무 웃겨서 셋다 웃어버렸다. 아저씨 경찰은 맞는 말이라며 가장 크게 웃으셨다. 집에만 있으니 밥상머리 사진뿐이지. 생각해보니 정말 요리 사진만 잔뜩! 경찰의 질문이 백 퍼센트 이해가 갔다. 그렇게 A의 사진을 보여주며 키가 엄청 크다고 알려줬더니 음식 사진 질문을 한 아저씨 경찰이 안으로 가더니 얼마 안 있어 A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굉장히 언짢은 얼굴의 A.


“마스크 코 아래로 내려서 잡아간 거래”

“아니야. 난 절대 코 아래로 안 내렸어. 내가 흑인이라 잡아간 거 같아.”


억울해하던 A에게 네가 그럴 리가 없다 생각했다고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라며 위로해줬다. 나중에 진정이 좀 되었을 때 그에게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억울해도 때로는 참아야 할 때가 있어. 살다 보면 억울한 일 많아. 난 네가 안 그랬다는 거 믿어.”


쿠바에서는 길을 걷다가도 종종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기도 한다. 타투를 심하게 하거나 복장이 불량하거나 용모가 단정하지 않거나? 보통 그런 사람들 위주로 하는데 A는 나와 만나기로 한 때나 우리 집에 오는 길에 종종 경찰 검문에 걸렸다. 그때마다 흑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던 A. 쿠바도 인종차별이 아주 없지는 않은지라 그의 말 하나하나에 참 마음이 아팠다. 가끔 한국이 인종차별 가장 심한 나라일 거라고 말해주긴 하는데 인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편견들이 언제쯤 바뀔는지.


말레꼰을 지나가는 쿠바 경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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