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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싱 Feb 24. 2022

나를 살리는 것들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런 순간을 좀 더 모아봐도 좋을 것 같았다.



언젠가 눈을 뜨면 할머니가 되어있길 바랐던 적이 있다.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몇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니 그건 너무 피곤한 일이잖아. 그간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왔을 테니 이미 겪은 사람이 되길 바랐다. 누군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물었을 때 딱히 없다고 답했다. 짧은 생이지만 늘 포댓자루를 매고 길을 걷듯 애쓰며 -자주 꾸는 꿈의 일부다 - 매 순간 후회 없이 보냈기에. 아쉬움은 있어도 그게 그때의 나에게는 최선이었음을 안다.


요즘은 그래도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나의 23살보다는 24살이 나았지. 와 25살에 어떻게 살았지? 싶어도 지금의 나는 전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앞으로가 더 괜찮아질 거란 기대. 이런 걸 희망이라고 하나. 막연한 기대, 단순한 희망이라기보다는 수년간의 경험으로 쌓은 빅데이터에 의한 합리적인 추론에 가깝다.


러다가도 공연히 찾아온 여전히 어렵고 막막하다. 매사 초연하고 차분하면 좋으련만 나는 자주 웃고 울고 화내고 감동하는 사람. 유독 마음에 부침이 심했던 지난주에는 이런 것들이 도착했다.


별이네 가족의 김장 김치. 혹 떨어졌을까 다시 보내준 묵은지와 갖은 반찬들. 일상에서 문득 떠올려주는 일. 그 순간을 모아 꾸린 상자. 박스 위 꾹꾹 눌러쓴 이름. 몇 방울의 유머. 선뜻 나누는 격려. 분주한 길 위의 위로. 몇 번의 소리 나는 말과 몇십 번의 소리 없는 말.


모두 친구들이 보내준 마음들이다. 박스를 열고 김치 죽죽 찢어   그릇을  자리에서 뚝딱했다지. 김치가 매콤해서 땀까지 흘렸다. 먹고 나니    같았다. 개운한 식사였다.  끝의 매콤함이  가실 때쯤에는 그냥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까닭으로 종종  없이 물렁해지다가도 이런 선물 같은 순간으로 인해 툭툭 털고 다시 밥을 짓게 하는 .  힘이 어쩌면 나를 기대하게 만들고 조금  살아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순간을   모아봐도 좋을  같았다.



•싱싱의 먹고 사는 문제 @still.life.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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