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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영 Mar 20. 2024

훌쩍, 3월 제주

십여 년 전 어느 날, 어떤 불안의 모습으로 인해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를 탔었는지 모르겠다 - 아니, 방금 이 문장을 써 내려가면서 기억이 났지만 공유하기 어려운 일들이라 모르겠다는 말로 입막음을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홀린 듯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렸다.
타버린 야자수 잎을 붙이고 있는 나무가 몇 그루 보인다. 살아있는 나무인걸 알면서도 죽은 나무 같다고 생각했다.

공항 안에 비치된 제주도 지도중 가장 글이 적고 간략해 보이는 안내문을 골랐다. 지도를 펼쳐서는 마치 모르는 문제를 연필을 굴려 찍듯이 지도를 펼쳐 처음 눈길이 가는 곳으로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버스옆구리에 쓰여있는 경유지를 보고도 못 미더워 기사아저씨에게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지를 묻고 버스를 탔다. 버스는 타야 할 누군가를 더 태워야 하는 것처럼 조금 머뭇거리더니 몇 정거장 지나 터미널에 도착했다.

오래된 시멘트덩어리로 보이는 시외버스터미널 안에 작은 매점이 있었다. 미쳐 매점 안에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 껌, 사탕 같은 손안에 들어갈만한 조막만 한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먹을 것들이 보이니 입안에 침이 돌았다. 밤양갱 하나와 생수하나를 사고는 산방산으로 간다는 버스를 탔다.

기름냄새가 나는 오래된 시외버스는
아까 탄 버스와는 달리 정해진 시간이 되자 바로 출발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여러 조합으로 다양한 계절에 왔던 곳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길들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어느 동네 어귀에 내려 계속 걸었다.
바다가 보일 것 같은데,
이 언덕을 넘으면 바다가 있을 것 같은데,
계속 흙먼지가 올라오는 흙바닥만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멀리 산방산과 형제섬이 보이고
너른 거리는 푸른 바다가 보이고
그 자리에서 그냥 얼음!이라고 외마디를
외치고 서버리고 싶은
그런 풍경이 보였다.

어디든 무엇이든 끝은 있겠지
걷다가 걷다가 내가 찾은 바다처럼

제주는 지금 유채꽃이 한창이란다.
그때처럼 훌쩍 생각 없이 떠나고
무작정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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