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제서품: 살아있는 사람 3, 4 (2)

주교좌성당에서 결혼하고 10,784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니! 그렇게 멋진 이발을 하고 나는 2007년 5월 12일 가톨릭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이어 그 다음날 성 김대건 안드레아 한인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와 신학생 여섯 명, 교수님 한 분이 ‘살아있는 사람 3’으로 클리브랜드 마라톤을 다시 뛰었다. 당시에는 대구대교구 사제연수, 부모님과 지인의 방문, 감사미사 등으로 정신없을 때여서 따로 남긴 기록은 많지 않지만 2006년에 $1,690을 모은 것처럼 2007년에는 $2,400을 모금하여 사라를 위해 마다가스카로 보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랑의 선교회 엠마누엘 수사님께서 답장을 보내왔다.


“Yes!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천 명이나 되는 우리 어린이들과 홈리스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5일을 밥을 나누어 주는데 1톤의 쌀을 사도 2주가 지나면 떨어집니다. 참고로 1톤의 쌀을 사는데 600달러가 듭니다......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레이스가 성공적이길 기도합니다.”




사제 서품 후, 클리브랜드 교구에 있는 성 안토니오(St. Anthony) 성당의 보좌신부로 발령을 받았다.


성 안토니오 성당에는 폴란드에서 이민 와서 살기 시작한 나이 든 어르신들이 많았다. 하루는 미사를 마치고 신자들에게 인사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다가오셨다. 그분은 망설임 없이 내 볼을 꼬집으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먹고 싶을 만큼 귀엽네!(I can eat you up)” 태어나서 처음 본 동양인 신부가 얼마나 어리고 귀엽게 보였을까.


미국의 조용한 도시에서 한국인 사제로 살아가는 일은 평범했다.


아침 7시에 아침 미사를 봉헌하고 오전 9시에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미사를 바친다. 미사 후에는 복사단 교육 또는 종교 수업을 하고 사무를 보다가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오후 1시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2시에는 병원에 있는 환자 방문을 간다. 돌아와서는 면담, 강론과 교리 준비를 하다가 저녁을 먹는다. 저녁식사 중에 신자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와서 장례식장에 가서 고인을 위한 기도를 바친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니 저녁 9시다.


나이 드신 분이 많은 본당이라 장례미사가 많았다. 한번은 주임신부님께서 일주일 휴가를 떠나셨는데 기다렸다는듯이 여섯 분이 차례로 돌아가셨다. 보통 미국에서 장례가 나면 사제가 장례식장에 가서 기도를 바치고 유족들과 장례미사 준비를 상의한다. 그리고 다음날 장례미사를 바치고 동네에 있는 무덤으로 함께 가 마지막 기도를 바친다. 여섯 분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매일 오전에 장례미사를 바치고 묘지에 가서 한 분을 묻고 돌아서서 다시 장례식장에 가니 나중에는 어떤 분을 떠나보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렇게 일년 동안 돌아가신 분이 백명이 넘었다.




본당 초등학교 8학년 학생들에게 종교 수업 시간에 사라와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네 명의 학생-크리스틴, 브리지트, 니콜, 킴벌리-이 함께 뛰고 싶다고 했다. 이들 외에 학부모 토미, 유학 중인 한국 청년 염민규 토마스 아퀴나스가 2008년 ‘살아있는 사람 4’가 되어 클리브랜드 마라톤에 참가했다. 함께 학교를 뛰거나 자전거를 타며 대회 준비를 했다. 그들은 모두 마다가스카의 사라를 기억하며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10킬로미터 마라톤을 준비했다.


살아있는 사람 4, 2008년


마라톤을 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풀코스 마라톤 완주를 하는 그날부터 꿈을 꾸게 된다. 다음 대회에서 기록을 좀 더 단축시키고 싶은 것에서부터 유명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인 3시간 내에 풀코스를 완주하는 서브 쓰리(Sub-three)를 꿈꾸게 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의 꿈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마라톤,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참가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나이대별로 공식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그 당시 내 나이대 18-34세 그룹은 3:10이었으니 클리브랜드 마라톤 대회에서 3시간 10분 내에 풀코스를 완주해야 보스턴 마라톤을 뛸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2020년 기준으로 18~34세 남자 그룹이 보스턴 마라톤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기록은 3:00(여자 3:30), 35~39세 그룹은 3:05(여자 3:35), 그리고 40~44세 그룹은 3:10(여자 3:40)으로 단축되었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본당 초등학생들도 함께 했기에 열심히 준비했다. 본당 옆 고등학교 트랙을 뛰면서 스피드를 연마했고 주말이면 장거리 달리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마침내 대회 날이 왔다.


또 비가 내렸다. 모자를 쓰고 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계획했던 페이스를 유지하며 마의 32킬로미터의 벽도 무사히 넘겼고 호수바람의 저항도 이겨냈다. 하지만 마지막 5킬로미터를 남겨두고 페이스가 떨어졌고 목표했던 3시간 10분 내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10킬로미터를 뛰고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을 본당 학생들 얼굴을 생각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래서 마지막 3킬로미터는 전력 질주를 했고 3:14:03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뛰면서 내내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생각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살아있는 사람 4, 2008년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present)가 선물(present)이듯이 우리의 인생 역시 그러할 것이다.


클리브랜드 마라톤을 마치고 며칠 뒤에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2008년 8월이면 내 나이가 만 35세가 되는데 그 때문에 2009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참가신청을 할 때 나는 35-39세 그룹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새 그룹의 보스턴 마라톤 대회 참가 자격을 얻는 공식 기록은 3시간 15분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보스턴에 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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