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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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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붉게 물드는 이유는 나무가 부끄러워서입니다

가을입니다. 단풍이 참 곱습니다. 단풍을 보고 있으니 한가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단풍이 붉게 물드는 이유는 나무가 부끄러워서라는 사실입니다. 겨울이 닥치면 나뭇잎을 다 떨구어 내고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야 하는 나무는 자기의 속살, 치부를 다 보여 주어야 하기에 부끄러워서 붉게 물드는 것입니다. 


사철나무인 소나무도 조용히 부끄러워 합니다. 늘 푸른 줄 아는 소나무를 자세히 보면 솔잎의 일정 부분이 눈에 띄지 않게 노랗게 변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떨어집니다. 부끄러워서 붉게 물드는 나무가 있는 반면에 부끄러워 조용히 노랗게 변하는 소나무도 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잎은 없습니다.


살기 위해 부끄러움을 감당하고 추락하는 나뭇잎, 떠나 보내야 하는 나무나 떨어지는 나뭇잎이나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습니까.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이라고 윤동주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나무도 그렇게 부끄러워 붉게 변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일부를 떨어뜨리며 우리에게 말합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나무는 그것을 감추지 않고 보란듯이 화려한 색깔로 드러내며 지금의 부끄러움이 나중에 자랑이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윤동주의 <별헤는 밤>)


부끄러움이 없으면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슬퍼하고 기꺼이 죽을 때 자랑같은 봄이 올 것입니다. 나무가 겨울을 앞두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끄러워하듯이 위령성월을 시작하며 죽음을 앞둔 인간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며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 이기심, 욕망 등 부끄러운 모든 것을 숨기지 말고 조심스레 하느님 앞에 내려 놓을 때, 부끄럽지만 아름답게 봄을 맞이할 것입니다. 


올 봄, 부끄러움이 자랑처럼 피어날 것을 믿으며 이 가을에 기꺼이 떠나보내는 나무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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