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버지의 길

세상을 떠난 서영민 신부님의 아버지 장례식 강론

육년전 4월 초에 우리 동기 서영민 신부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우리가 느꼈던 당혹스러움, 슬픔, 상처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일이 있고 몇 달 뒤 성모당에서 서윤덕 아오스딩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가 서영민 신부님을 세상에서 떠나보내며 느꼈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신 영혼의 절반은 아들 신부와 함께 무덤에 묻은 듯 지리산 정상에서 고사한 구상나무처럼 온전히 소진되어 하얗게 서 계셨습니다. 그렇게 자주 성모당에서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매일 집에서 나와 40-50분을 걸어 성모당에 와서 기도하고 미사 참례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구도의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아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 16,28).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때가 되면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런데 그 길에 우리는 다른 아버지를 만납니다. 생명을 준 아버지, 함께 산 아버지, 그리고 신앙과 죽음을 가르쳐 준 아버지를 만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아버지는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생명을 주기는 했지만 동시에 상처도 주었으며, 함께 한 시간보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떨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았으며, 신앙의 길로 인도하거나 삶의 마지막에 아름다운 모범을 보인 아버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서윤덕 아오스딩 아버지는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영혼과도 같은 아들 신부를 떠나보내고 육년이라는 시간을 살면서 지상에서 남은 아버지의 길을 충실히 걸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으로 고통을 인내하셨고,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셨고,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한결같은 정성으로 끝까지 본당에서 성가 반주를 하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그것이 바로 아오스딩 아버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요한 16,32). 그렇습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서영민 알렉산델 신부도 혼자가 아니었고 지상에서 살았던 서윤덕 아오스딩 아버지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성모당에서 바친 시간과 기도, 매일 걷고 또 걸은 아버지의 길이 가진 의미입니다. 


모든 것이 생명을 꽃 피우는 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동기 신부님처럼 아버지는 늦가을에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십니다. 두 분은 모두 하얀 머리에 같은 선한 인상을 하고 있으니 누가 보아도 천상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또한 성모님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도 두 분은 남달랐으니 이제 하늘의 어머니가 두 분을 따듯한 품에 안아주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겪는 고난을 피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압니다. 자식을 먼저 잃고, 가족이 아프고, 사람사이에서 겪는 시련과 상처를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담담히 맞아들이고 희망을 가지고 지나가야 함을 또한 믿습니다. 오늘 서윤덕 아오스딩의 장례미사를 통해 우리는 어떤 한 아버지가 자식을 잃고 걸은 십자가의 길에서 다시금 희망과 위안을 얻습니다. 두려움 없이 헌신하고 사랑하면 하느님 아버지와 성인들이 그를 지켜 하늘나라로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까지 성실하며 용기있게 죽음을 향해 걸어가신 서윤덕 아오스딩 형제님, 평온한 임종을 통해 아프지 않고 기쁘게 하늘 나라로 걸어들어가셨음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아마 아들 신부가 열심히 하느님 아버지 곁에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비로운 하느님 아버지께 아오스딩과 알렉산델 부자의 영혼을 같이 맡겨 드립니다. 두분에게 죽음은 하느님 아버지와의 만남일 뿐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재회이기에 우리 역시 슬퍼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를 청합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아멘.

매거진의 이전글 찬미예수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