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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변함없는 사랑을 바라는 이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이영애)와의 이별을 예감한 상우(유지태)의 질문입니다. 그들에게 우연히 찾아온 사랑은 봄날처럼 환하고 따듯하게 달아올라 순식간에 절정에 이르렀지만 곧 익숙함과 일상이 설렘을 덮쳤고 마침내 사랑이 천천히 그 빛을 잃게 됩니다. 은수의 마음이 식는 것이 상우보다 더 빨랐고, 남겨진 상우가 묻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은 변하는 것일까요,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 먼저 우리는 ‘변화’라는게 무엇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변화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좋은 것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계속 유지하고 싶고, 어떤 사람과 좋은 관계에 있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위 환경에 만족한다면 굳이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예전에도 그렇게 했으니 지금도 그렇게 하면 된다.’처럼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까. 굳이 애써서 바꿀 필요가 없고, 누구에게도 변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봅시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따라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고 오랜 뒤에 돌아와서 셈을 하게 됩니다.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를 받은 종들은 그것들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더 벌었고, 주인은 그들의 성실함을 칭찬합니다. 하지만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땅에 묻어 숨기고, 그 때문에 주인에게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꾸중과 함께 그 한 탈렌트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계속 가지고 있으면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한 탈렌트를 땅에 묻은 종은 그것이 앞으로 그대로 유지될 것이기에 주인이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틀렸습니다. 오늘 좋은 것이 영원히 그대로 좋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지 않으면 우리는 가진 것마저 잃게 됩니다.

 

사람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은 계속 자라고 변하는데 부모가 자식의 어릴 때 모습만 사랑하고 또 그렇기만을 바란다면 그 부모는 자식과 소통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잃게 됩니다. 배우자나 친구는 어떻습니까. 한때 좋고 사랑스럽던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 달리 보이게 되고, 예전에 몰랐던 다른 모습 또한 드러납니다. 이때 차이와 변화를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계속 변합니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가치들이 계속 자라고 공급되지 않으면 모든 인간관계는 지루하고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만 봐도 나이가 들어 기력이 떨어지고 인지력도 예전같지 않은데 어떻게 20년전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이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세상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새로운 유행, 기계, 생각 등이 변화를 가져오고, 코로나19는 그러한 변화를 더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전 생각만 하고 ‘라떼는 말이야!’하며 행동한다면 ‘꼰대’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공동체에 큰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계는 변하고 우리도 변화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결국 산다는 것은 계속 변하는 것이며, 잘 산다는 것은 그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까닭은 오늘 복음에 잘 나와 있습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재능을 활용한 종들은 모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위험을 피하고 주인의 돈을 땅에 묻어 둔 종은 실패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이 되겠습니까? 


변화는 적이 아닙니다. 적은 두려움입니다. 좋은 것이 변하도록 내버려둔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것을 계속 있는 그대로 변하지 못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해가 됩니다. 변화는 어렵지만 변화는 삶의 진리입니다. 계절이 변하듯이 자연은 늘 변하고 우리도 그 자연의 일부이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시간에 따라 변하고 자라서 더 성숙하는 것입니다.  


변화는 희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변화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주어진 좋은 것을 영원히 나만을 위해 유지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을 믿고 위험을 무릎쓸 때 우리는 자비로운 주인에게서 다음과 같은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15,23). 


다시 <봄날은 간다>로 돌아가 봅시다. 영화 제목처럼 봄날은 지나갑니다. 붙들고 싶어도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상우는 어렸고 그 사랑에 진실했기에 그것이 영원히 변치 않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보야,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방부제를 듬뿍 먹인 인위적인 사랑이라면 유통기한이 없겠지만 사랑도 결국 사람의 일이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싱싱하고 진실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겠지만’ 결국 사랑은 그렇게 변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변화를 거부하고 예전 것만을 고집하다보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마저도  질식하여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고 기꺼이 변화를 추구하는 용기와 이미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탈렌트로 충분함을 믿는다면 어떤 두려움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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