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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바라보며

지난 2월 코로나19가 대구에서 급격히 확산될 때 저는 군위본당 신부로 대구를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매일 대구에서 발생한 새로운 확진자 소식을 접하면서 대구에 있는 신부님들, 지인들, 신자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대구의 어려움, 고통, 불안, 두려움을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지금, 대구는 예전의 평온함을 되찾았고 코로나19는 다른 도시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봅시다. 우리는 코로나19로 무엇을 배웠습니까? 반드시 지켜야 하는 방역이나 생활수칙만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코로나19로 바뀌었습니까? 우리 삶이 예전보다 힘들고 불편해진 것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변화되었습니까? 적게 쓰고 아껴 쓰고 덜 오염시키고 더 배려하고 더 사랑하고 더 기도합니까? 


저의 두려움은 이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울면서 한탄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한다면’(루카 19,44) 우리는 다시 어려움에 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그런 예루살렘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재앙을 피할 수 있었겠지만 역사는 그렇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의 희망은 마스크나 백신이 아니라 우리 삶의 변화입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소고기를 적게 먹고 자동차를 적게 타고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그 대신 자주 걸어다니고 가난한 이웃을 잊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지구와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삶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분은 오직 한 분,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분은 살해되시고, 또 그분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시기 때문입니다(묵시 5,9). 


우리가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고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예전과 똑같이 생활하며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찾지 않는다면 대구를 바라보며 다시 울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과 환경보호를 위해 행하는 우리의 작은 실천, 가난한 이웃을 위한 관심, 하느님의 어린양과 함께 하는 기도의 삶만이 우리를 재앙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오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11월 16일(월)부터 21일(토)까지 대구가톨릭평화방송 FM 93.1Mhz에서 <오늘의 강론>으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아침 6:50분-7시와 오후 4:50분-5시에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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