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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의 마지막에 피는 종이꽃

영화 <종이꽃>을 보고 나서

"할아버지는 사람이 죽으면 좋으세요?"


장의사 성길(안성기)에게 꼬마 노을(장재희)이 묻는다. 장의사는 사람이 죽어야 일을 하고 그래야 돈을 버는데, '사람이 죽으면 좋으냐?'니 참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죽음 앞에서 이처럼 곤란하고 때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는다.


<종이꽃>은 그 어려운 질문을 조심스럽고 현실감 있게 동행하는 영화다. 꽃이 귀하던 시절,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누구의 상여에나 마지막으로 달았던 종이꽃, 그 안에 담긴 뜻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평등,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고귀함이다. 그래서 종이꽃은 가장 인간다운 꽃,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가장 마지막에 누구에게나 피는 꽃이다. 



의대생이었다가 사고로 반신불구가 되어 한순간에 (자신과 아버지의) 두 인생을 날려버린 아들 지혁(김혜성)은 죄책감 때문에 죽으려고 애쓰지만 비슷한 상처를 입은 은숙(유진)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외침이라는 것'을 아는 은숙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 절망에서 오히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때리고 칼로 베고 가두어 놓는 남편 때문에 죽기보다 싫은 삶을 마주해야 했지만 삶이란 원래 그런 것임을, 아름답고 예쁘고 황홀하기도 하지만 지저분하고 더럽고 보기 싫은 것도 삶의 모습임을 고백한다.


"산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죽은 사람에게는 장의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장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노을의 당당한 꿈 이야기를 들으며 어른으로서 부끄럽다. 우리는 살아도 죽은 듯 살고, 죽어도 제때 죽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삶에만 매달리며 죽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살아. 살아. 살아." 은숙이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는 이 말은 영화에서 가장 귀한 말로 다가왔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이런 영화의 한 대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로 인한 아픔 때문에 죽을 이유까지도 찾을 수 있지만 똑같은 실수 앞에서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요!'하며 살아갈 용기를 낸다면 삶은 더 고귀한 것이 된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양양이(고양이)와 노숙자에게 모든 것을 내 주고 떠난 장선생을 정성을 다해 장례식으로 떠나 보내고 남은 사람들에게 삶이란 죽음으로 인해 더욱 가치있는 어떤 것이 된다. 잘 죽는 길이 잘 사는 길이며, 잘 사는 길이 잘 죽는 길이다.


오랜만에 영화의 온기를 듬뿍 받으며 따듯한 눈물을 흘렸다. 63년 연기 인생에서 가장 묵직한 울림을 보여준 배우 안성기의 연기는 섬세하면서도 품격 있는 영화의 백미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았던 캔디같은 유진의 밝음은 삶을 노래하고 춤추고 싶게 만든다. 장의사가 되고 싶다는 노을의 꿈은 신자들과 삶의 마지막까지 함께 걷는 장의사인 사제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휴스턴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에 빛나는 <종이꽃>을 여러분에게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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