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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전세계에(Urbi et Orbi)

코로나19 시대에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지난 3월 27일, 비가 내리는 사람도 없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로마와 전세계(Urbi et Orbi)"에 보내는 특별강복을 전하셨다. 어떤 한 사람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내미는 손길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별강복은 마르코 복음 4,35-41절의 말씀, 곧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의 이야기와 묵상으로 시작되었다. 그 말씀을 내가 번역했던 것을 옮기며 한 해를 보내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마음과 축복의 말씀을 다시 새긴다.



Urbi et orbi


“저녁이 되자”, 여러분이 들은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실은 지난 몇 주동안 계속 어두운 저녁이었습니다. 무거운 어둠이 광장과 거리, 그리고 도시를 덮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가고 귀를 멀게 하는 침묵과 비통한 공허가 모든 것을 채우는 가운데 움직이는 모든 것을 멈추게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기 중에서 느끼고 사람들의 행동에서 봅니다. 우리는 두렵고 무섭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예상하지 못한 거센 돌풍에 꼼짝없이 갇혔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배에 타고 있고 모두 약하고 길을 잃었음을 깨닫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모두 같이 노를 저어야 하며 서로를 위로할 필요가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하고 한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소리치는 제자들처럼, 우리 역시 우리 자신만 생각해서는 안되고 함께 극복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제자들이 겪고 있는 상당히 당황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분은 엄중한 모습으로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일어서십니다. 그분은 무얼하고 계셨습니까? 폭풍우 속에서도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복음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주무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분께서 깨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조용하게 하시고 나서는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꾸짖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의 믿음과 반대되는 제자들의 믿음의 부족을 한번 봅시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면,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하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는 관심도 없고 걱정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을 때가 아닙니까? “나를 전혀 걱정하지 않나요?” 바로 이 말이 우리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폭풍우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자 주님께서는 절망에서 그들을 구해주십니다.


폭풍우는 우리의 연약함과 거짓과 미신적인 확신을 드러내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일상, 계획, 습관과 우선순위를 통해 쌓아 온 것들입니다. 또한 그것은 얼마나 우리가 그런 것들로 인해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서 무디고 연약하게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폭풍우는 우리 머리속에 가득찬 생각들과 사람의 영혼을 삼키고 있는 망각이 무엇인지 발가벗겨 줍니다.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과 행동들이 오히려 우리를 마취시켜 버리고, 우리의 근원과 우리보다 앞서 산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도 단절시켜 버립니다. 우리는 스스로 역경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를 없애버렸습니다.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항상 몰래 자신의 이미지와 이익만을 염려하던 모습이 없어지고 나서야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사실, 곧 우리가 서로에게 속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님, 당신의 말씀은 오늘 저녁 저희를 다시 일깨웁니다. 당신은 우리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셨지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 힘만을 믿고 맹렬한 속도로 당신없이 먼저 가버렸습니다. 이익을 위한 탐욕, 물건의 소유욕, 성급함의 유혹에 우리를 가두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가르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전세계에 걸친 전쟁과 불의에 대해서도, 가난한 이들의 외침과 병들어가는 지구에 대해서도 귀를 막았습니다. 모든 것을 무시하면서 병든 세계에서 우리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당신께 간청합니다. “일어나십시오, 주님!”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님, 당신은 우리를 믿음에로 초대하십니다. 이것은 당신의 존재에 관한 믿음이라기보다 당신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에 당신의 부르심이 더 긴급하게 울려퍼집니다. “회개하여라.”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요엘 2,12). 당신께서는 이 시련의 시간을 ‘선택의 시간’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은 당신의 심판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 곧 사라질 것들 중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 필요없는 것 중에서 꼭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우리의 심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주님과 이웃에게로 향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 여정에서 두려움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수많은 훌륭한 동료들을 봅니다. 용감하고 관대하게 자신을 바치는 이들은 바로 성령의 힘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바로 성령에서부터 비롯하는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함께 엮여 있는지, 보통은 잊고 지내는 일반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문이나 잡지의 헤드라인에 나오거나 유명한 쇼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분명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의사, 간호사, 수퍼마켓 직원, 청소부, 간병인, 운전기사, 정부관계자, 봉사자, 사제, 수도자와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혼자서는 구원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통의 순간에 드러나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체험합니다.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21).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일 인내심을 가지고 희망을 주며, 공포가 아니라 공정한 책무를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선생님들이 우리의 어린이들을 돌보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조정하여 함께 기도하면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매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봉헌하고 선의의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기도와 조용한 봉사, 이것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믿음은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을 때 시작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넘어집니다. 우리는 옛날 항해사들이 별을 필요로하듯이 주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배에 초대합시다. 우리의 두려움을 그분께서 없애시도록 맡깁시다. 제자들처럼, 우리 역시 그분과 함께 있으면 배가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힘은 바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심지어 나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선으로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폭풍우 가운데 평안을 가져오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은 절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폭풍우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이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 연대와 희망으로 서로에게 용기와 위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일깨우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깨우시어 우리가 부활 신앙을 다시금 불태우도록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닻,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키, 우리를 구원한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희망, 우리를 낫게 한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것도 우리를 그분의 사랑에서 갈라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외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서로를 향한 부드러움과 만남의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를 구원하시는 복음의 선포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분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 곁에 살아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은총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깨닫고 키우고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말고 서로에게 희망의 불이 다시 타오를 수 있도록 합시다.


그분의 십자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금의 모든 어려움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창의력을 발휘할 힘을 얻기 위해 권력과 소유욕의 욕망을 잠시 내려 놓읍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환대와 우애, 연대의 새로운 형태 안에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용기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로 우리는 희망을 껴안을 수 있도록 구원되었고, 이것을 통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고 이용하고 강화시키도록 합시다. 희망을 껴안기 위해서 주님을 껴안읍시다. 이것이 두려움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희망을 주는 믿음의 힘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베드로의 바위같은 믿음이 있는 이곳에서 저는 이밤 모든 이의 힘이며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서 주님께 여러분을 맡깁니다. 로마와 전세계를 품고 있는 이곳에서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어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세계를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주소서.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나이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약하고 우리는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은 폭풍 속에서도 자비로운 가운데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 28,5). 베드로와 함께 우리 역시 우리의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당신께 드립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우리를 걱정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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