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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자: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다 읽고 나서

지난 3월 27일 비가 내리는 저녁 홀로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기도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가장 어두운 순간에 홀로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처럼, 아무도 없는 세상의 성당 앞에서 짦은 묵상과 성체로 축복을 전해 주셨다. 그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인류가 고통 뿐만 아니라 반전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음을, 그래서 인류가 더 나아지거나 더 추해지는가 하는 중대한 시점에 섰음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준비된 것이 <꿈꾸자: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이다.


<꿈꾸자: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은 어두운 밤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인류의 영적 지도자로서 우리와 함께 걸으면서 건네시는 횃불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새롭게 나아가도록 세 가지 과정을 보여주신다. "보고(see) 판단하고(judge) 행동(act)하라!" 불편한 우리의 현실을 진실한 눈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눈으로 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세우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하느님을 선택하고, 마지막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신선한 행동을 제안하셨다. 곧 보고 선택하고 행동하기를 바라셨다. 그 자세한 내용은 책을 직접 읽기를 바라며 교황님의 마지막 당부가 담긴 후기(Epilogue)를 번역하여 싣는다. 


후기


우리는 아마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할까? 미래에 나의 자리는 어디에 있으며, 이것이 가능하도록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 단어가 제 마음에 떠오릅니다. "중심에서 벗어나기(decenter)"와 "초월하기(transcend)".


그대가 중심에 놓인 곳에서 여러분 자신을 그 중심에서 벗어나게 하십시오. 그것은 문과 창을 열고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같은 생각과 행동의 패턴으로는 수렁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게 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제가 처음에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피해야 할 유혹은 우리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는 것입니다.


위기는 여러분을 움직이게 하겠지만 아무데도 가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봉쇄 상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거나 몸을 풀기 위해 동네 주변을 걷고자 집과 아파트에서 나갔습니다. 그러나 곧 우리가 있던 곳과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치 여행객이 바다와 산으로 일주일 휴식을 위해 떠났다가 숨막히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행객은 옆길로 샜다가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왔을 뿐입니다.


대신 저는 그와는 반대되는 것, 곧 중심에서 벗어나 초월할 수 있는 순례자의 이미지를 더 선호합니다. 순례자는 자신에게서 나와 새로운 지평으로 자신을 열기에 집에 돌아왔을 때 더 이상 같은 사람으로 같은 집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은 순례를 위한 시간입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가 걸어들어가는 미로와 같이 그대를 세계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앞장서 걸어 들어가게 하는 시간입니다. 미로가 우리가 다니는 물리적 공간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 미래를 향해 가는 미로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미로는 오직 두 가지 방법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올라가는 것,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초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테세우스를 돕기 위해 묘안을 낸)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미로는 지금 세계가 있는 곳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다양한 '미노타우루스' 괴물에 먹히지 않기 위해 애쓰며 헤매고 있습니다......


미로는 삶이 언젠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우리의 자기중심주의, 개인주의, 편협한 시각, 모든 것이 예전같은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과거에도 그다지 좋지 않았음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리아드네 공주는 테세우스에게 길을 빠져 나올 수 있는 실뭉치를 줍니다. 바로 그 실뭉치를 우리도 받았습니다. 우리의 창의력으로 미로의 논리를 넘어서 움직여 중심에서 벗어나고 초월하는 것입니다. 아리아드네의 선물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성령입니다. 이는 아리아드네처럼 우리가 길을 찾고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우리가 뒤처져 거울을 바라보면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계속해서 돌다가 어지럽게 되는 것입니다. 미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셀피(자기중심)' 문화를 벗어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눈, 얼굴, 손, 그리고 필요를 직접 봐야 합니다. 바로 이 방법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얼굴과 가능성으로 가득찬 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을 당기는 것'을 일단 우리가 느낀다면 미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속해 있고 우리는 인류의 한 부분이며 같은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다 성녀는 말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어떤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영혼들에 의해서 함께 결정된다는 확신이다. 그리고 모든 감춰진 것이 드러나는 날 우리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그러한 영혼들에게 빚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 손에 있는 실을 당기는 이들입니다......


여러분이 실이 당겨진 것을 느낀다면 멈추고 기도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면 복음을 읽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 자신안에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열고, 중심에서 벗어나고, 초월하십시오.


그리고 행동하십시오. 전화를 걸고, 방문하고, 봉사하십시오. 무얼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말하더라도 도울 수 있습니다. 다른 세상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십시오. 아마 이것은 좋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시 한편을 소개하면서 이 책을 마칠까 합니다......이 시는 제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 시가 우리를 도와 우리의 사람들이 생명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벗어나 초월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희망(Hope)


폭풍이 지나가자

도로는 잠잠해지고

우리는 모두 

완전히 난파된 배의 생존자다.


눈물 젖은 마음과

축복받은 운명으로

단지 살아있다는 것으로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다.


어떤 이방인과도 포옹할 것이며

친구가 살아있다는

행운을 기뻐할 것이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음을 기억할 것이며

마침내

한번도 배운 적이 없던 모든 것을 배우게 된다.


모두가 고통스러웠으므로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으며

다시는 게으르지 않고

더 자애로워질 것이다.


우리가 얻었던 것보다

모두에게 속해 있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길 것이며

더 자비롭고

더 헌신하게 될 것이다.


살아있음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알 것이며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

우리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을 위해 연민으로 넘쳐 날 것이다.


시장에서 한 푼을 구걸하던

이름도 모르지만 

늘 우리 편에 서 있던 노인을 그리워 할 것이다.


아마도 가난한 노인은

하느님이 변장한 것이었는지도.

그러나 우리는 이름을 묻지 않았고

그럴 시간도 결코 없었다.


모든 것이 기적이 되고

모든 것이 전설이 되고

우리가 얻은 삶,

우리는 그 삶을 존경할 것이다.


폭풍이 지나갈 때

부끄러움 속에서 주님께 고백한다.


당신께서 한때 우리에게 꿈꾸셨던 것처럼

당신은 우리를 더 좋게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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