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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방학

방학 마지막 날 밤에

초중고와 대학교, 신학교와 유학생활을 보태 학교에 다닌 시간을 계산해 보니 26년이다.(강풀의 웹툰 <26년>이 떠오른다.) 일년 중 보통 5개월이 방학이니 내 인생 전체의 방학은 130개월, 곧 10년하고도 10개월, 3,900일이나 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도 방학은 여전히 모자란다. 


어린시절 방학은 밀린 일기와 숙제로 곤혹스러운 기억이기도 했지만 시골에서 긴 시간 자연을 벗하며 지낼 수 있었고, 커서는 실습과 긴 여행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방학은 배우는 시간만큼 가치있다.


신학교와 대학교에는 인기있는 달력이 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병원에서 만드는 4개월이 함께 나오는 달력이다. 교수나 학생 모두 한 달력 안에서 다가올 방학을 기다리면서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나 학생이나 모두 똑같다.



그런데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장 신부님께서 방학휴식기간을 1월로 끝내고 2월 1일부터 본격적인 신학기 준비와 회의를 소집하셨다. 물론 그전에도 자율전공교수회의와 신입 신부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지만 이제 방학은 끝이다. 아쉽다.


생각해보면 학생들의 방학은 휴가(vacation)이고 교수나 강사의 방학은 멈춤(break)이다. 잠시 멈추고 돌아보고 채우는 시간이다. 나는 그 시간에 <가톨릭 사상> 강의록을 써야 하는데 그 주제가 '인간', '신', '종교', '사랑', '정의'와 같은 것들이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한시간 반 안에 인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90분 안에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대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적어도 유명한 학자들이나 어려운 이론보다는 우리가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내가 겪은 체험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필요할 것 같았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아닐까. 그래서 다시 옛날 영화를 본다. <어린 왕자>와 <미션>, 그리고 임용이 되면 도서관에서 빌릴 책이 많다.


내가 지도신부로 있는 대구ME에서 처음으로 직접 제작한 달력을 보면 놀라운 날짜가 나온다. 1월 39일 금요일! 우리는 당황하면서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란 사람 사이의 약속이니 결국 1월 39일 금요일은 그렇게 왔다가 갔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2월달 달력에서 2월 1일을 못 찾는다면 내일도 방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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