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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 영전에

나는 모른다.

아버지가 유신시대에 국회의장을 함으로써 받는 시선의 의미를.


나는 모른다. 

삼십대 후반에 한국 최연소 주교로 선출된다는 것의 의미를.


하지만, 나는 안다.

클리브랜드로 유학 가는 신학생을 맞이하고 격려해 주신 자상함을.


나는 안다.

마다가스카에서 비싸지 않게 구입한 성모상을 받고는 매우 기뻐하셨음을.


나는 안다. 

미바회를 창립하셨고 미바회 관련 일로 전화를 하면 언제나 기꺼이 응해주셨다는 사실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SICUT IN COELO ET IN TERRA)"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은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분'이셨다.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며, 자신을 '별 것 아닌 사람'으로 생각한 분이셨기에 49년간의 주교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떠나는 마당에 굳이 멀리 군위묘원으로 가시겠다고 유언까지 남기신 것은 그분의 성품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준다.


"지나온 후 돌이켜 생각할 때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교구를 위해서 잘못한 것, 또 교구의 사람들을 위해서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유언장 중에서)


용서를 청하는 목자에게서 사람다움의 냄새와 고뇌를 함께 본다. 자주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평생 그 길을 묵묵히 걸으셨으니 은혜일 따름이다. 대구대교구 많은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을 풍채가 훌륭한 분만이 아니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으로 기억할 것을 믿는다.




얼마전 후배 신부가 이문희 대주교님과 관련된 일화를 들려 주었다. 지난해 말, 몸이 쇠약해지신 대주교님을 방문해 인사를 드리면서 예전에 이 대주교님께서 쓰신 <드럼>이라는 시가 기억나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 대주교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나도 오래전에 읽었던 그 시가 기억나 신학교 도서관에서 찾아 다시 읽어본다.


1990년 12월, <일기>라는 비매품 시집의 서언에는 '다만 삶을 나누고 싶은 순진한 뜻에서 엮은 시집이 아무에게도 무례를 끼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감사의 정을 전한다'고 써 있다.


드럼 (이문희)


나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다.

애절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배우지 못하였다.


나는 첼로를 배우고 싶었다.

달밤에 나즈막히 할 이야기를 하고펐다.

그것도 나는 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침내 드럼을 배우고 싶었다.

미친듯이 두들길 신바람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손벽 하나 잘 칠 줄도 모른다.


이제, 새로 배우는 것은 아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채

단념, 단념만 하게 된다.


곧, 귀도 소리를 다 듣지 못할 것이나

그래도 기다려지는 것은

마음만이라도 밝아지는 것


그리고

가슴통 안에 천고의 북소리가 울리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을 끊을 수가 없다.


2021년 3월 17일 범어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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