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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논어 에세이를 읽고

김영민 교수로부터 <논어 에세이> 초대장을 받았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만난 저자는 위트와 센스로 무장해 어려운 주제를 쉽게 글로 풀어 쓸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저자이다. 그런 저자가 '논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그 첫 주제로 '논어 에세이'를 썼다. 


저자는 생각의 무덤을 '텍스트text'라고 부르며, 텍스트의 무덤을 '콘텍스트context'라고 부른다. 콘텍스트란 어떤 텍스트를 그 일부로 포함하되, 그 일부를 넘어서 있는 상대적으로 넓고 깊은 의미의 공간을 뜻한다. 죽은 생각이 텍스트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려면 콘텍스트를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죽은 텍스트가 부활하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텍스트 때문에 울고 웃었던 적, 텍스트에 매료되어 몇 번을 읽고 또 읽어 외우려 했던 적, 텍스트가 마치 저자인 것처럼 신봉했던 적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텍스트에 갇혀서 콘텍스트를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아주 흔한 일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동안 나도 저자가 지적한대로 고전을 서둘러 읽고 자신이 정한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관심은 공자보다는 노자와 장자에게로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서둘러, 좋아하는 것만을 취할 때 놓치게 되는 것을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 중에서)


인생 여정은 경주가 아니다. 오히려 마라톤에 가깝다. 긴 거리를 보며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 서둘러 골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다를 죽음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과정 자체를 즐겁고 보람있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논어>라는 고전을 읽을 때에도 서둘러 읽기 보다는 생각의 시체인 텍스트 안에서 꽤 오래 헤매다가 보면 오래전 죽었던 생각이 부활하는 사상사적 모멘트가 있을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논어>라는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15-17쪽)




저자는 가볍게 말한다. 사람들은 인생은 고해라고 하면서 동시에 장수하려 든다고. 그것은 마치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추가 주문을 하는 일과 같다고. 공자 역시 같은 모순을 겪었다고 한다.(50쪽) 


"도가 행해지지 않음은 (공자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망 속에서 실패를 향해 전진했다. 눈앞의 손익을 따지지 않는 그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공자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묻는다. 


'예언자는 예루살렘 밖에서 죽을 수 없으며,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자신의 길을 가야 했던' 예수님처럼 죽음을 알면서도 그리로 향해 가는 것은 그 안에 어떤 열망과 희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떤 문장도 삶의 진실을 완전히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어떤 사람도 상대방을 완전히 정확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파하지 않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90쪽)


같은 맥락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떠올랐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오랜만에 즐거운 책을 덮으며, 논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저자 특유의 위트로 풀어 새로운 접근을 해내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내심 매사를 귀찮아하는 우리에게 한방 날린다.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은 오직 '밍기적'뿐이라고."(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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